|
|
 |
 |


 |
|
|
| 지금여기 31-5호(2026년 9/10월, 통권185호) e매거진이 발행되었습니다
|
=?> =?>
│발행인의 말│
진정한 관찰, 모르는 채로 관觀하기
- 식識과 견見의 차이
내면을 관찰할 때, 누구는 치밀하게 잘하고 누구는 아무리 관찰해
도 잘안된다 합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잘안되는 이유는 관찰도중 '알
겠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관찰은 멈춥니다. ‘알겠다’는
것은 종결을 의미합니다. 끝났다고 여기는 마음이지요. 거기에 '이것
이 에고구나' 하고 이름까지 붙어버리면 마음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집니다. 그것이 식識으로 보는 마음입니다.
견見, 그것은 모르는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나’를 관찰해보니,
‘나’라고 여겨지는 ‘느낌’이 얼굴 주위에 있고, 가슴에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뭔지는 모르나 느낌에 차이가 생김을 알아채는 것. 거기
아직 이름이 붙지 않으니 관찰은 계속됩니다. 그렇지 않고 이것이
‘나’지, 라고 한다면 즉각 ‘앎’속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모르는 채’로 있을 때에 마음엔 약간의 긴장이 있고, 깨어 있습니
다. 반면 ‘알았다’ 하고 ‘편안해졌다’는 것은 에너지가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확정되었습니다.
거울 속의 진흙이 거울을 더럽힐 수 있을까요? 거울 속의 꽃이 거
울을 예쁘게 만들 수 있나요? 그냥 상일 뿐입니다. 모든 예쁘다, 더럽
다, 옳다, 그르다는 결정화結晶化한 마음의 상입니다. ‘아는 마음’은 ‘모
르는 마음’을 물들일 수 없습니다. 그 정해진 ‘앎’과 ‘이름’에도 불구하
고 거울은 전혀 정해진 것도 없고, 이름도 없는 것처럼. 그 거울이 하
는 일이 바로 견見입니다. 거울에는 어떤 결론도 없고, 어떤 확정도 없
습니다. 무지한 것이 아니라 ‘모르는 채’로 봅니다. 반면 모든 말과 상
으로 된 것은 일종의 결론이며 죽은 것입니다. 관찰을 멈추게 하지요.
그러므로 ‘모르는 채’로 머물며 관觀하십시오. 그것이 곧 견見의 길
입니다.
지금 여러분 마음은 어떻습니까?
- 월인(越因) -
** 권두언 전체는 이곳에서 보세요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