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越因)은 '인연을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 만물과 우리 내면은 모두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다는 인연법칙의 소산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어주고 있지요. 그 어느 것도 변함없는 제1원인인 것은 없습니다. 우스펜스키의 말대로 '미지(未知)가 미지를 정의하는' 현상이지요. 그것은 외부 물질세계와 내부 정신세게를 망라하여 모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의존하는 '인연'의 '뿌리없음'을 보면 이제 인연을 넘어서게 됩니다.
그의 모양은 이런 저런 파도록 가득하지만 모양을 넘어선 그곳엔 오직 아무런 모양도 없는 '물'만이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바로 이 인연의 세계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말하는 모든 이들을 대신해 월인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 인연의 세계를 넘어 있는 곳을 향하여...
(본문에서...) 절대의식은 어디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발로 딛고 서있는 지금 이곳에 이런 저런 일상의 생각이 활개치는 상대의식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늘 음양을 포함하는 태극과 같습니다. 음양이라는 표면의 상대세계가 멈추면 바로 그곳이 태극의 세계인 것입니다. 당신이 괴로워하는 그 번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멈추는 순간 바로 그곳이 절대세계인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채워진 드라마의 세계, '나'와 '대상'이 있고, 이것과 저것이 있는 상대 세계는, 바로 그 순간 절대세계 위에서 벌어지고 있으므로 항상 지금 이곳에 이 둘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와 물이 같이 있듯이...(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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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물 《깨어있기》 책 (참가 전 일독 요망)
작은 화분(종류 상관 없음. 선인장은 제외)
통찰기록용 작은 수첩
필기구 개인컵(또는 텀블러)
세면도구 및 수건
침낭
<머 리 말>
‘나’는 어떤 과정을 거쳐 ‘나’라고 느껴지게 되는 것일까요? 아주 어린 아이들이 ‘나’라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라는 느낌은 분명 성장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라고 느껴지고 우리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요? ‘나’라는 것이 어떻게 사물을 ‘보게 되고’ ‘듣게 되며’ ‘알게 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참으로 흥미로운 과정과 놀라운 환상이 겹쳐져 있습니다. 먼저 이 전체 청사진의 뿌리에는 ‘나와 너’라는 이원론이 자리하고 있으며, 생명에너지가 그 중 하나를 더 많이 편들고 있고, 에너지 불균형이 일어난 그 둘 사이의 평형을 이루기 위해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안다’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즉, 당신에게 어떤 사물이 보인다는 것은, 보고 있는 ‘나’와 보이는 ‘사물’로 나뉘어져 있고 그중 ‘나’에 에너지를 더 많이 두어 그것과 동일시함으로써 중심으로 삼고 있으며, 거기에서 ‘사물’이라는 대상이 보이고 느껴지고 알려진다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보고 듣고 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환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우리가 보고 듣고 안다기보다는, 보여 지고 들려지고 알려지는 것들에 이름이 붙어 의식이라는 전체 네트워크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기에서 ‘나’란 그저 하나의 요소일 뿐이며, 전체 흐름의 본질은 순수한 생명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채게 됩니다. 분리된 내가 있다는 느낌, 사물이 있다는 느낌, 무언가 들리는 현상, 다른 것과 차이 나는 어떤 맛이 있다는 느낌은 모두 생명력의 장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패턴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책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를 통해 그러한 과정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맛보게 될 것이며, 그러한 경험을 통해 ‘나’라는 패턴에서 벗어나 그 패턴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자리’에 자신이 늘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009. 11. 1 월인
<워크숍 내용>
● 의식(識)
- 의식의 해부도
- 우리는 의식의 근본을 왜 보려하는가?
- 감각하기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 의식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 ‘나’라는 느낌은 어디서 오는가?
- 의식 탄생의 과정
● 주의(行)
- 주의의 종류
- 물은 달이 아니라 달그림자를 보고 있다
* 확장연습 : 침묵으로 가득 채우기
● 감지(想)
- 감지란 무엇인가?
- 중성적으로 느끼기
- 분별감 느끼기
* 확장연습 : 에너지 바다
- 감지의 과거성 : 기억
* 확장연습 : 존재의 중심 찾기
● 감각(受)
- 감각 발견하기
* 확장연습 : 확장하기
- 다양하게 감각하기
- 낯설게 보기
* 확장연습 : 사물과 접촉하기
● 용어정의
- 감각 : 있는 그대로를 느끼다(受)
- 감지 : 익숙하다, 안다는 느낌 속에 갇히다(想)
- 주의 : 생명의 투명한 힘(行)
- 생각과 의식 :감지들의 네트웤(識)
- 동일시 :삶을 '알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
- 감정 :감지들간의 밀고 당김을 보여주다
- 감각에 열려있기
- 깨어있기 : ‘있음’을 깨닫기
- 각성(覺性) : 의식의 본질을 깨닫기
- 홀로스교육원 오시는 길 -
주소: 경남 함양군 서하면 황산길 53-74
연락처: 010-2667-2261, 02-747-2261
(국도에서 우측에 동호정 식당 간판이 보이면, 그 반대편이 황산마을 입구입니다. 입구 양갈래 길에서 다리가 있는 오른쪽 길이 아니라, 왼쪽 언덕길로 3~4분 정도 올라오면 왼편에 장승이 있는 곳이 수련원입니다.)
※ 버스편
- 부산(사상터미널)-> 안의터미널(055-962-0448)/ 하루 4대 운행
- 대구(서대구터미널)-> 안의터미널/ 하루 8대 운행
- 대전(동대전터미널)-> 함양터미널(055-963-3281)-> 안의터미널
- 광주(광주터미널)-> 함양터미널-> 안의터미널(시외버스 이용)
(다른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은 거창 또는 함양터미널로 오셔서 안의행을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거창이나 함양에서 안의 오는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있으며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다르마 (승려) 깨어있기, 의식의 대해부 (기초) 수업은 이번이 세 번째인 듯싶다. 오래전에 들었던 수업이라 기억이 희미해져서 모든 수업과정이 처음인 듯 낯선 것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평소 조금씩 연습되었던 것들이 있어서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되고 연습과정에서도 수월하게 따라할 수 있었다. 월인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나 연습내용들도 이전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수정 보완된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올 1월부터 100일학교 원격 수업이 줌미팅을 통해 진행되었던 만큼 평소 주제 의식을 가지고 매일매일의 과제들을 연습하고 질의응답을 통해 피드백을 받았던 것들로 인해 많은 것이 정리되고 단편적이고 파편으로 연습되었던 것들이 종합적으로 연결되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나의 모든 생각과 감정과 느낌, 습관과 패턴과 기준들, 신념들은 후천적으로 교육되고 훈련되어 형성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및 산물들이었다는 통찰이 좀 더 확고하게 각인된 수업이었다.
‘나’라고 하는 것,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일련의 학습된 것들 가운데 하나이고, 단지 ‘나’와 ‘나의 것’이라 여겨지고 느껴진 것들에 에너지가 모이고 가중치가 부여된 현상이었을 뿐, 그것이 본래적인 고유의 실체로서의 무엇은 아니라는 통찰이 살짝 드러났던 수업이었다. 아직 그런 통찰이 뿌리내리지는 못하였지만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구도 여정에 힘을 실어준 계기가 되었다. 수업에 도움주신 월인 선생님과 후원해주신 자생님, 그리고 동참해주신 도반들에게 감사드린다.
한울림 책읽기(깨어있기)를 하고 공부했으면 많은 것을 느꼈겠지만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
연습 때는 헤맸지만... 나라고 생각한 것들이 착각 속에 살았음을 느꼈다. 새로운 세상의 만남이었다.
공부하는 단어들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감지, 느낌, 주의, 감각 등 처음 만나는 것 같았다. 주의 중립을 느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여러 모양으로 마음의 운전을 잘 할 수 있도록 애써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지금보다 좀 더 깨어, 에너지 덩어리인 마음의 움직임을 직시하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감지부터 시작해보자.
마음의 구조와 운영원리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으며 온 시간 내내 깊은 느낌 속에 머물렀으며 경험했다. 신기하게도 이전까지만 하여도 진한 느낌들이 남아 있어 감동 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3일간의 경험을 통해서인지 느낌들이 희미해지며 빠르게 느낌 없음으로 되고 밝음만이 감싼다.
감각, 감지, 의식, 생각의 순으로 마음의 구성이 이루어지고 분별을 통해서 마음이 나눠지고 차이가 생기면서 에너지 흐름이 생기고 다양한 분별 속에서 좋고 나쁨에 의해 내가 보는 세상이 생기며 이런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네 세상인 게다.
나라고 하는 것도 경험을 통해 구별해 낸 느낌이며 다양한 관계만큼 다양한 나가 있고 이 또한 느낌 일뿐이다.
삶이 허무하다는 느낌이 올라왔으나 그속에 머물지 않고 사라진다. 미내사에 들어오면서 한 단계씩 과정들이 끌 낼 때마다 과거에 수많은 궁금증과 수많은 경험들을 하면서도 여기까지 오게 된 힘에 의해 이치들을 깨달으면서 명쾌함과 가벼움이 느껴지며 힘이 샘솟는 듯한 느낌이 들며 상쾌해진다.
새로운 감각연습 _ 자생(공동체학교) 11월 28일부터 3일간 깨어있기 기초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우주님과 바다님과 함께 기존에 했던 기초와는 좀 다르게 더 깊이있게 더 열성적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매순간 강의듣고 연습하고 나누는 시간이 알찼고 우주님의 새로운 시각과 바다님의 깊이있는 나눔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항상 느끼지만 이번도 모든 과정이 새롭게 다가왔고 주의와 감지 그리고 감각까지 정리할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만든 감지화분으로 연습할 때에는 뿌듯함도 있었고 정원에서의 연습때는 다정함이 올라왔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느낄때는 나무가 흔들리는지 내 마음이 흔들리는지 구분이 안가고 경계지으면 더욱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면서 나무도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동물 감지를 할때에는 태풍이 밤이 목희의 도움으로 앞면 옆면 뒷면과 얼굴 표정까지 잘 관찰할 수 있었고 장자의 애교로 재미있게 연습할 수 있었다.
평상시 하던 감각연습이 아닌 새로운 방법의 감각 연습을 할때에는 삼매로 갈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근원과 가까운, 마치 마음이 완벽한 상태 깨끗한 상태인것 같은 생각이 연습이 끝난 후 있었다.
감각은 마음을 살필수 있는 도구란 선생님의 말씀에 하루에 1분이라도 계속 감각 연습을 해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깨어있기 기초 시작전에는 지겨울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새로운 연습과 통찰로 인해 나에게는 알찬 프로그램이 된것 같다.
항상 성심성의껏 강의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같이 나눔을 가져주신 바다님과 우주님께 감사드린다.
초심이 사라진 이유 _바다(공동체학교) 이곳에 오기 전에는 마음 공부에 관한 여러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봐도, 그 무엇도 분명하지 않는 상태였다. 정상이 보이지 않는 안개 낀 산을 끝없이 올라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상태에서 깨어있기를 처음 들었을때는 정말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이토록 자세하게, 논리적으로, 경험적으로 한계단 한계단 알려주는 곳이 또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공동체 학교 막바지에 이르러 올해의 마지막 깨어있기 기초를 하는 지금,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 공부에 대해 그때 가졌던 열망과 간절함, 기쁨 이런 감정들이 사그라들었다.
그 변화가 나쁘게 느껴진다거나, 다시 초심을 불태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주의의 세기를 의식하면서 식물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았다.
과거 경험에 의해, 어떤 식물은 끌림이 더 강하게 일어났고, 어떤 식물은 옅게 일어났다.
그때, 선생님께서 ‘과거 경험의 작용’과 최근까지 겪은 ‘무기력’을 연관지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지 여쭤봐주셨다.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니, 끌림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과거 경험이 작용을 안한다는 말이라고 힌트를 주셨다.
그러자 지금의 변화가 이해되며 이 공부에 강한 끌림을 느꼈던 이유가 떠올랐다.
청소년 때, 우연히 찾아온 강한 황홀감, 하나된 느낌에 대한 경험이 그 끌림의 기반이 되어주고 있었다.
삶이 가벼워지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으로,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로 여겨지는 경험이 찾아왔을때, 그 당시에는 너무나 좋았지만, 그때의 순간이 기준이 되어 더 큰 고통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한 고통, 분리되어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다시 늘 사랑 속에서 살고 싶은 마음에 의해 이 공부를 추구해왔었는데, 이곳에서 배우면서 와 닿은 것들이 그러한 추구력을 옅어지게 만든 것 같다.
의식의 상태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투명하고 맑은 상태로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그것이 핵심은 아니라는 것.
마음위에 떠오른 상들-모든 생각, 기억, 감정은 늘 지금 인식되고 있다는 것.
모든 상들은 그 자체로 실체를 지니지 않고, 주객 구조 속에서만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그 어떤 것도 진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것.
추구해오던 '나' 또한 마음 위에 떠오른 대상이었다는 것.
그러한 배움들이 과거의 기억에서 힘을 빼게 해주었고, 그것을 통해 이제 더이상 마음 공부에 전과 같은 열망은 지니지 않게 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앎이 온전히 체화되기 까지는, 의식적 유능과 무의식적 유능으로 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우주 (법인경영지원컨설팅)
책을 읽고 참여해야 하는데 바삐 지내다보니 놓쳤다. 과정 참여 전 며칠을 앞두고 급한 대로 빌린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펼치는 순간 왜인지 읽기도 전에 책이 주는 에너지가 느껴지고 무언지 모를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30여 페이지밖에 읽지 못하였는데도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 담긴 글을 보니 앎을 추구하던 내면의 무언가의 감정에 닿은 듯 떨림으로 나의 깨어있기가 시작된다.
의식의 전개과정부터 느낌의 속성에 관한 이론을 이어가고 주의에 따라 감지와 감각을 연습을 통해 경험한다. 첫날에 주의를 의식하는 다양한 연습을 진행하고 치유프로그램에서 진행되는 바디스캔과는 다른 방법론을 전달받고 잠들기 전에 실행할 과제가 주어졌다. 슬라이스로 분리하는 바디스캔은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론이어서였는지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차례대로 진행하며 경험되는 느낌은 ‘나’라고 하는 것이 마치 공간과 같은 경험을 한다. ‘나’라는 존재가 신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 나는 공간과 연결되어있구나! 나는 어디에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구나! 놀라운 경험을 한다.
둘째날, 전날 연습에 이어 보다 깊이 있는 ‘주의’를 의식하는 연습을 한다. 의도적, 자동적 각각의 공간과 대상에 대한 느낌을 경험한다. 사물과 식물을 바라보면서 주의를 보낼 때와 보내지 않을 때의 느낌 차이를 경험한다. 이 연습을 통해서 내가 느끼는 느낌이 나의 내면에 쌓여있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험의 바다에 쌓아놓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상’이구나를 경험한다. 또한, 감각의 조건과 상황이 달라지면 느낌도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한다.
느낌이 바뀌는 절차를 이해하고 사물과 식물 각각에 대한 감지연습을 진행한다. 야외 자연 연습을 통해서는 내가 생각과 관념이 가진 배경에 따라 같은 상태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체험한다. 보이고 느끼는 것조차 실재가 아니며 나의 과거경험이 투사된 느낌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셋째날, 수련하듯 벗이 되는 강아지 태풍이와 아침산책을 나섰다. 이튿날 마무리 수업으로 진행했던 ‘주의’를 강의실 전체로 두어 느낌을 느껴보았던 기초연습이 떠올라 태풍이와 걸어가는 길에 주의를 전체에 둔다. 공간의 한계가 있었던 강의실에서의 연습과 다르게 마을 전체에 땅과 하늘까지 주의가 닿는 공간이 크다. 전체주의로 걷다보니 문득 두려움이라는 것을 ‘나’라는 신체 안에 가두고 그것이 나라고 여기며 괴로워했었구나! 라는 깨달음에 전율이 돋는다.
산책 후 프로그램 시작으로 밖의 자연에 소나무숲까지 전체주의로 걷고오는 연습을 한다. 주변의 나무들, 땅, 숲, 햇빛 전체가 느껴지면서 가볍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울컥 눈물을 난다. 나라고 여기는 이 ‘몸’이 자연 전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나와 자연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나’라고 여기는 신체도 전체의 일부이며 일부이면서 전체구나! 라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그 밖의 많은 연습들을 통해서 ‘나’라고 여겼던 세계가 내가 만든 세계이며 그 세계에서 두려움, 저항, 기쁨, 슬픔, 성취감 등 모든 느낌들은 내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만들어낸 느낌임이 분명하다는 깨달음을 경험하면서, 인간은 채우기 전 결핍 때문에 괴로워하고 채운 후에 지루함 때문에 괴로워하는 존재라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며, ‘두렵다, 힘들다’라고 말했던 순간들의 삶을 반추해본다.
‘나’로부터 ‘깨어있기’의 시작을 이끌어주신 월인 선생님께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도토리 (주부) 생각이 많은 상태로 조금 쉬고 싶다는 느낌으로 참여를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온 첫날부터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져서 졸린 줄도 모르고 수업에 집중해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특히 ‘생각을 도구로 사용하라’는 말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고민을 하기보다 고려를 해라. 느낌, 생각은 도구일 뿐이다.
느낌, 감지 연습, 주의제로 연습, 마지막으로 감각의 맛보기까지, 특히나 행동을 해보고, 써보고 정리해보고 말해보는 일련의 과정들이 신선하게 느껴지고 다시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혼자서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몰랐는데 기초를 잘 다지고 가는 느낌입니다. 처음 오기 전 책을 읽으면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정리해보고 싶어졌습니다. 특히나 주의 제로 연습은 신선하고 자극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주의를 주고만 살았는데 주의를 회복하는 방법도 있다니 재미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와 비교해서 많이 설명해주셔서 더 와 닿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물에 비친 달그림자, 시각은 느낌이다, 아직 와 닿지 않은 말들이 있긴 하지만 질문을 하고 자기 관찰을 통해서 일상에서 연습을 해나가다 보면 통찰이 오겠지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이번 기초에 마침을 찍어 봅니다.
꽃마리 (산림치유지도사/백일학교 과정) 이번 기초 깨어있기에서 와 닿는 점은, 깨어있기란 대상을 느낌으로 느끼는 것이 분명한 것이고 기준, 대상, 현상을 동시에 보는 전체 입장에 가깝다는 것이다.
주의 연습을 할 때 ‘나’로부터 주의가 나온다고 여겼지만, 주의가 나(의도)에 실려 나가면서도 여러 곳(?)에 주의가 쓰인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이 부분은 더 탐구해보겠다.
더불어 대상에 따라 주의가 달라진다는 경험도 탐구해볼 거리다. ‘내가’ 주의의 세기를 정하고 보낸 것이 아님에도 대상을 볼 때마다 주의의 세기가 달라지는 것. 내가 하지 않음에도... 이 부분이 정리가 안 됐다. 주의를 탐구하는 것이 (일상에서 주의 제로, 전체주의 등) 중요하다는 게 새롭게 와 닿았다.
감지 연습을 하면서 통찰에 적은 내용 중 대상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이유는 뭘까? (당연한 말인 듯하나 당연한 게 궁금해졌다) 고정된 ‘나’라면 대상들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느끼는 것(주체)이 거울이라면 대상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는 말이 더 적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명료한 체험으로 확인되어야 할 부분 같다.
주의 제로 연습 때 새로웠던 점은 내 마음에 잡힌 느낌에 주의 제로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기존에는 대상에 초점을 빼거나 힘을 빼려고 했었다. 이로써 느낌은 밖이 아닌 내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게 좀 명확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일상에서 주의제로 연습을 많이 하면서 탐구심은 일으켜보겠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순수한 탐구의 질문이 내게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각 연습을 할 때 왜 하는 걸까 질문이 올라왔는데, 생각/느낌/감각/순수의식 단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이 마음을 운전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이 다가오니 주의 제로, 전체주의가 깊어지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동기가 생겼다, 깊어지고 싶다.
생강꽃 (직장원/원격 백일학교 과정) 호오好惡가 없는 이순간의 느낌을 감지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감지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쉽게 호오에 휘감기고, 나의 기준으로 상대나 사물을 호오로 보고 느끼며 살아왔다. 그런 과거의 기계적 삶을 버리고 현재를 살아가고 싶어 깨어있기 기초를 했다.
인식은 나와 대상을 나누는 것 속에서 일어나고, 주의는 에너지이며, 감지는 호오가 없는 분별되는 느낌이고, 감각은 형태와 질감 마저 사라진 상태라고 배웠다. 또 세상에 ‘사실이란 것은 없다’라고 배웠는데, 이전에 나는 ‘사물은 변화가 없는 것이니 사실 아닌가’라고 생각며 거기에 휘둘렸다. 하지만 사물에 대한 나의 느낌에는 늘 변화가 있고 그것은 그당시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은 늘 변화한다. 다만 마음의 변화를 인식하는 마음이 있어, 마음에 변치 않는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하는 느낌에는 진실이 없다. 느낌은 계속 바뀌고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지하고 알기 위해 연습을 했다. 거기서 깨어있다는 것은 ‘나와 대상을 동시에 보는 것’임을 배웠다. 그 깨어있는 마음이 변함없는 마음에 가까운 것 같다.
수업 중에 주의 연습을 하면서 안 것 4가지: 자동적 공간 지향 주의와 자동적 대상 확인 주의가 있었고 의도적 공간 지향 주의와 대상 확인 주의가 있었다. 의도적 주의는 의도에 따라 주의가 움직이는 것이고, 자동적 주의는 내 의도와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또 주의의 세기 연습도 하였다. 주의를 1에서 10까지 강하게 주고 약하게 주는 연습을 하면서 주의가 1부터 10까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멍한 마음상태가 주의 제로라고 생각했었는데, 연습을 해보니 주의제로는, 보는 마음은 선명하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것임을 경험했다.
이것들을 배우고 경험하니 수많은 느낌과 생각 등이 흘러가고 지나가지만, 내가 붙잡고 있었기에 그것들이 마치 내가 된 듯 느꼈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느낌은 내가 아니고 흘러가는 것이고, 투명한 거울처럼 호오가 없는 나가 진짜임을 발견해보고자 한다.
바다 (공동체학교 과정) 공동체학교 학생으로 있으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깨어있기를 여러 번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매번 다르게 깨어있기를 진행해주시지만, 어느 순간 안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초심을 잃어가는 듯했다. 그래서 이번 깨어있기 기초의 목표를 ‘안다는 마음 없이 처음 듣는 것처럼 듣기’로 삼았다. 그러니 반복이라고 여기며 놓치고 있던 부분들과 새로이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께 감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감지연습을 하는데, ‘나는 감지를 알고 있어’라는 안다는 마음이 충분히 에너지를 쏟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의식하며 ‘안다는 느낌’이 있어도 그 느낌과 상관없이 정성들여 사물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알고 있다’는 느낌도 사물의 느낌을 잡아내듯 뚜렷이 잡혔다. 그러자 거기에 뭉쳐있던 에너지가 용해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알고 있다’라는 신념이 에너지 통로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 앵두관에 늘 놓여있던 식물들을 대상으로 감지연습을 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식물들처럼 느껴졌다. 그러자 충만감과 사랑이 올라왔다. 나도 그렇고, 식물들도 그렇고 우리의 존재가 서로 같은 재료로 이루어졌다는 직관적인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 손에 컵이 닿을 때처럼 모든 느낌들이 의식에 가 닿는 것이라는 것, 대상이라는 것이 철저히 의식되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던 것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감지연습을 하니 자연스럽게 나라는 느낌을 포함한 모든 느낌들이 ‘느낌(대상이자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이라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듯했다. 이 과정을 통해 거리감이 느껴지는 방식으로 느낌이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느낌 그 자체가 이미 ‘나’가 될 수 없음을 더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았다. 안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감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와 닿았다.
주의 연습을 통해서는 연습을 통해 주의가 점점 더 세밀하게 의식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상 깊었던 연습 중 하나는 자동적 주의를 의식해보는 연습이었다. 지금까지 자동적 주의에 의해서 습관적으로 살아왔으며, 자동적 주의를 선명히 의식할 때 조금 더 균형 잡힌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와 닿았다.
또한 이번에 한 주의 연습과 그간의 주제와 연결되어 새로이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다.
무언가를 알고자 할 때 늘 주의를 보내는 방식으로 알아왔기에 앎이 일어나는 배경 또한 주의를 보내는 방식으로 알고자 해왔다. 주의를 보냄으로써 아는 것은 늘 주체와 대상으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전체이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부분이 아닌 나누어지지 않은 전체를 알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관찰되는 모든 느낌은 그것이 부분이기에 의식된다. 그렇기에 그것을 관찰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부분이 아니게 된다. 그렇기에 주의를 보내는 방식으로는 바탕을 발견할 수 없다.(주체)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에 동일시되어 (대상)또 하나의 그림을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지금 이 순간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바탕의 증거가 된다. 주체-대상이 마음 위에 떠올라 있다는 것. 그러나 이것이 그저 발견에 그치고 삶에 적용되지는 못했다. 그 결과 여전히 배경을 주의를 보내는 방식으로 확인하려고 하거나, 공허감에서 벗어나 마음의 상태를 바꾸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주의 연습을 통해 공허감에 저항하고 있는 상태이든, 기준에 에너지가 많이 쏟아진 상태이든, 어디에도 주의가 뭉쳐있지 않고 열려있는 상태이든 모두 주의의 모습이 바뀐 것일 뿐이라는 점이 와 닿았다. 거친 파도이든, 잔잔한 파도이든 모두 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물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인식되고 있다.
이 앎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 의도가 또 마음 위에 나타난 것이라는 게 의식되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질문을, 탐구를 멈추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과 집중해서 깨어있기를 들으시는 도반 분들 덕분
현재 (전직 교사) 백일학교를 하면서 깨어있기 기초에 두 번째 참가하였다.
수업을 받으면서 처음 듣는 내용들에 내가 두 번째 참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감지는 개념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호수는 달에 뜬 그림자를 보는 것이지 달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이해되었고 선생님과 함께하는 감지 연습은 큰 도움이 되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중에 남편으로부터 온 문자 내용을 확인하며 가슴 아래쪽에서 아지랑이처럼 가늘게 올라오다 멈추는 화가 감지되었다.
이번 모임의 핵심은 침묵 느끼기였다. 비개인 모임을 하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깊은 침묵 속에 빠져서 사무실의 분주한 소리를 듣고 있지만 같은 공간 다른 차원의 느낌으로 있는 것을 경험했었다. 대충 무엇인지는 알 것 같으나 지나갔다. 온라인 백일학교를 시작하고 찬 바닥에 앉아 화분의 꽃을 감지하고 있던 중 몸으로 전해지는 한기와 달리 깊은 침묵으로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일어서도 설거지를 해도 그 침묵이 느껴졌다. 선생님의 설명으로 무엇인지 알게 되었지만 또 지나갔었다. 마지막 날 침묵 느끼기 연습을 한 후 참가자 한 명 한 명의 경험에 대한 선생님의 질문과 설명 속에서 체득이 되었다. 이미 바탕의 침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이. 그리고 알게 되었다. 느껴지는 느낌과 올라온 생각을 멈추면 사라지는 것들이 이미 침묵 속에 있기 때문이었다.
도란님, 꽃마리님, 어니님, 바다님, 자생님의 경험들이 다가와 공명하면서 이해와 느낌이 증폭되었다. 선생님의 혼신을 다하시는 가르침은 늘 감동이다.
도란 감정과 생각으로 나아가지 않고 감각에만 머물지 않는 중간 단계의 주의, 감지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지식화만 되어있던 마음공부 이론을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배려해주시며 알려주신 월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느낌 감지하는 연습 중에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빨리 캐치해서 교정해주셨고 개인적인 문제도 핵심을 짚어 간결하고 명확하게 풀어주셨습니다. 2박3일 동안 제 인생에서 가장 밀도 높은 충만감을 느꼈습니다. 주의 강도를 조절하고 범위를 확장하는 연습을 하면서 깨어있기와 고요한 배경을 맛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나와 대상을 분별하거나 아니면 그냥 멍때리며 살았습니다. 감지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인 것 같습니다. 현실생활에서도 주의집중과 주의제로 연습을 하면서 세상은 느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실감하고 싶습니다. 좋은 기운을 나눠주신 도반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심화 수업도 너무 기다려집니다.
어니(외국인학교 한국어교사) 백일학교를 시작하고 하루 하루 주어진 주제를 마음에 품고 살다가 11번째 주제인 ‘다른 공간으로 들어설 때 감지 느끼기‘를 만났었다. 감지라는 말을 잘 몰라 깨어있기 책을 보기도 하고 용어 정리를 찾아보며 이해해보려 했었지만 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임 때에도 이 주제는 좀 어려워서 깨어있기 프로그램 때 이해가 될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었다. 이번 깨어있기 기초 전까지는 어떤 의미도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모른 상태로 깨어있기 기초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우선 깨어있기를 하려면 감정과 감지를 알아야하고, 느낌과 생각도 정확히 알고 마음으로 깊이 경험해야 했다. 먼저 사물을 대입해 시작했는데, 누가봐도 분명한 사물을 가지고 이것이 사실인지, 그저 느낌인지 분별해야 했다. 이론으로는 알지만 선생님께서 내게 여러번 반복해서 질문하시면 내 안에 있는 경험이 살아나 ‘저것은 사물이지‘하며 혼란에 빠지곤 했다. 그러기를 여러번 반복하다 결국 이해가 되었고,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신기했다. 이어 ‘주의 느끼기’도 어렵지만 신기하고 결국 받아들이게 되었다. 느낌과 주의는 내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현재의 느낌을 말한다. 그 중 강하게 다가 왔던 것은 떠올리지 않아야 하는 것, 떠올리기 싫은 것은 이미 거기에 주의를 주고 있기 때문에 계속 주의가 가며,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었다. 어딘가 들어봤던 말이었지만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명확한 사실로 알게되니 그냥 받아들여졌다. 모든 것이 느낌이며,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경험 느끼기를 하며 나에게는 무섭게 다가오기도 했다. 내가 느끼는 것조차 내가 아니라니, 그럼 진짜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 있는걸까. 무엇이라 칭해야 할까. 이런 저런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 감지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감지, 느껴서 알고, 정확하게 마음을 잡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지 연습을 해야 했다. 감지를 연습하면 이치를 알게 된다. 감지연습을 하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고, 지금 여기에 있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것만 같다.
연습을 하루마다 어렵고 반복되었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 또한 느낌이라 있다가 사라지겠지만 앞으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같이 공부하고 지낸 도반님들과 선생님께 너무 감사했다. 선생님이라는 튼튼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있어 집중이 흐트러지거나 이해가 안 되어도 바로 바로 물어볼 수 있었고, 수없이 깨져도 다시 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어 2박 3일이 어렵거나 두렵지 않았다. 또한 같이 공부하고 처음인 나를 도와주시는 도반님들이 있어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다. 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실 다름아닌 깨달음의 즐거움이었다. 살면서 내가 스스로 이렇게 열정을 갖고 무엇인가를 해본적이 있는가. 깨어있기가 나를 변화시켰다. 앞으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루하루 산책하면서든 언제 어디서든 감지 연습을 하고 느낌느끼기를 하며 심화 프로그램을 기다려 보도록 하겠다.
꽃마리 (산림치유지도사, 백일학교 과정) 3번째 깨어있기 기초를 들었지만 이번엔 유독 처음 듣는 느낌이었다. 주의와 감지에 대해 자세하게 이론과 실습이 진행되었기 때문인 듯한데, 선생님께서 아래 2가지 질문에 대해 탐구해보라고 하셨다.
1. 감지로 볼 때 왜 느낌이 몸에도 느껴지고 저쪽에 있는 사물에도 느껴질까?
주의가 사물에도 내 마음에도 갈 수 있어서 그런 걸까? 추측해봤다. 주의가 여러 갈래로 쓰인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느낌이 감각기관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두 곳에서 느낌이 느껴지는 것을 보고 있네? 감각기관 밖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두 느낌 사이에 하늘이든 땅이든 어떤 공간이 있는 것 같이 이미지가 그려졌다. 새로운 실험을 통해서 이에 관련한 통찰이 일어날 수 있게 계속 탐구해보는 것으로 선생님께서 방향을 잡아주셔서 감사했다.
2. 의도는 누가 어떻게 낼까?
(누가) 과거에 쌓인 경험과 기준이 낸다. ‘나’라고 믿고 있는 신념에서부터 온다. 의도라는 느낌이 올라오는 거였다. 선생님께서 꽃마리는 부추기는 게 있어. 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생각해보니 결국 의도를 내는 것과 통하는 말이라고 느껴졌다.
(어떻게) 의도는 과거의 경험이 의도라는 탈을 쓰고 자신을 강화하고 확장시키려는 움직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쁘진 않다, 전체를 위해 쓰이면 조화롭게 의도가 쓰이겠지만 개인만을 위해 쓰이면 부작용을 낳는다. 어쩌면 존재를 유지하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의도’라는 필터로 비춰본 것 같다.
의도가 지금 이 순간에 느낌일 뿐이라면 그 의도가 내 전체라는 착각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마음의 느낌에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는 걸 반복하는 게 탐구의 실천이겠다. 내 전체에 가까운 고요함, 무한함과 떠오르는 느낌들을 함께 보면 그게 실천의 구체적인 모습이겠다. 점점 고요함에 온전히 머무는 힘을 키워갈수록 의도든, 기준에 빠지는 빈도가 줄면 탐구의 방향이 잘 가고 있는 것이겠다.
지난 1~2년간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 정말 무턱대로 돌진하듯 배워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좀 떨어져서 맥락과 디테일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정도가 되는 듯하다. 약간은 민감해지고 섬세해졌다는 변화가 기분 좋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공부가 점점 재밌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모든 분들과 생강꽃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