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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프로그램 가기 / 시샵 : 순일 이동호     

ㆍ글쓴이  :   HereNow (2003.06.09 - 14:11)
  무아삼매로 들어가는 스위치 (1/2) - '지금여기' 기사
이 글은 '지금여기' 2003년 1/2월호에 실린 순일 이동호님의 글입니다.

무아삼매로 들어가는 스위치 (1/2)
순일 이동호 / 편집부

이동호씨는 자신의 신위(神位:뇌에서 백회를 지나는 수직선과 인당을 지나는 수평선이 만나는 뇌속의 한가운데 지점)와 인당(印堂:제3의 눈), 대상(對象)을 주의(注意)를 통해 한줄로 꿰어내며 의식을 모았다가는 한순간 이완시키면 무아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삼매 스위치(?)"를 자신도 모르게 발견하였습니다. 최근 미내사에서 소개했던 NLP(신경언어프로그래밍)의 앵커링이론과 명상의 삼매상태가 연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앵커링(anchoring)이란 용어는 '닻내리기'라는 의미에서 암시되듯이 우리 마음의 어떤 상태가 형성되었을 때 유무형의 스위치(가령 마인드 컨트롤에서 세손가락을 쥐며 집중력 상태로 들어가는 삼지법과 같이)를 만들어 그것에 닻을 걸어둡니다. 연습이 잘 되면 이제 스위치를 작동시켜 즉시 그러한 마음의 상태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NLP에서는 앵커링을 두려움 등의 부정적인 마음상태를 변화시키거나 자긍심 등을 불러올 때 사용하였는데 이동호씨는 삼매로 들어갈 때 자신도 모르게 사용해왔던 것입니다. 물론 마음의 어떤 특정 상태와 아무상태도 아닌 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거기에도 앵커링이 작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스위치는 뭔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 스위치를 어떻게 발견하였는지 그리고 그의 삶의 체험을 들어봅니다(편집자 주).

들어가면서
체험이라고 쓰기가 주저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딱히 어느 시점에서 어느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어떠한 체험이 왔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저 공부하던 아이에게 중간중간 어느 시점마다 공부실력이 늘은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써야 한다면 이 이야기는 여러 시점이 있은 연후의 종합적인 것이기에 아주 긴 여정을 줄여서 써야하며 당연히 그러한 글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일 것이다. 또한 어느 시점에 있었던 체험이 또 왔던 경우도 있어서 시간 순서대로 쓰기에도 어려운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한가지 작은 통찰이라도 일어나게 한다면 그것으로써 고마울 뿐이다.

아버지가 독실한 크리스찬인 관계로 나는 영세를 받았다. 성당엘 열심히 나가던 중학교 시절 어느 날 신부님에게 아주 선하고 착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엘 가느냐고 물어 보았다. 신부님은 그렇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자식이 나쁜 짓 하여 감옥에 가더라도 대체로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부모인데, 그것에 비해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의 사랑보다 얼마나 작은가 하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원수도 사랑하려면 하나님 믿지 않는 인간으로서는 힘든 일이란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물론 하나님이 있다고 철썩같이 믿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 고민끝에 믿지 않기로 작정을 하고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긴 수필을 썼다.
그러자 더럭 겁이 났다. 철썩같이 믿고 있으면서도 내 의지로 하나님을 부정했으니 이제 내가 죽어서 갈 곳은 지옥 밖에 없다고 여긴 것이다. 고민하면 할수록 이번 생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서 지옥에 가더라도 그래도 나는 믿지 않겠다. 로봇과 같은 삶을 사느니 내 의지로 지옥에 가리라."라고.
'이 생을 어떻게 보낼까?' 이제는 그것이 나에게 너무도 진지한 선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짧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보고 깨끗이 가리라는 결정을 하였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삶이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늘 같은 생활처럼 여겨졌다. 사람들은 모두 '돈'때문에 사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방향을 정했다. '돈 때문에 살지는 않겠다. 또 행복만 추구하는 순탄한 삶은 밋밋하고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 삶이 아닌 것 같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맛보고 가려면 고통을 비롯하여 무엇이건 맞부딪치리라. 그 모든 굴곡을 맞고 모든 희로애락을 맛보고 가리라.'고. 정하긴 이리 정했으되 살다 보면 나약함이 드러날 듯 하였다. 그래서 자기최면을 걸듯이 좌우명을 만들었다.
첫째, 자기가 하고픈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다.
둘째, 후회하지 말자.
셋째, 책임지자.
첫 번째는 모든 것을 경험해보자는 것이다. 혹시 하고싶은데 결과에 매달리거나, 사회적 관습에 대한 도전이 되어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경우를 대비해 아예 최면으로 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생각이 떠오르면 무조건 실행에 옮겨보겠다는 결정이었다.
두 번째는 하고 싶은 것을 아무 생각없이 하다보면 분명 잘못된 선택도 있을 터이고, 그 결과 수많은 고통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후회한다면 하고 싶은 것을 다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내 스스로 오라고 한 고통들로 인해 후회하지 말자고 한 것이다.
세 번째는 살인과 같은 보편성에서 벗어난 일은 할 수가 없다고 여겨서 정한 것이다.

말없는 침묵, 평화로운 침묵

당시까지 나는 공부도 잘하고 순종적인 학생이었다. 헌데 하나님을 거역한다는 엄정한 사실 하나로 점차 무서울 것 없는 아이로 변해갔다. 여자도 사귀고, 두려움 없이 담배도 피웠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어른들을 조롱하듯 술집에 버젓이 교복 입고 들어가서는 술을 시키곤 했다. 물론 주지 않는 곳도 있었는데 그러면 말라는 식으로 나오곤 했다. 이것이 좌우명을 정한 후에 어떻게 살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일면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급우가 던진 볼펜에 오른쪽 눈 한가운데를 맞고 동공이 찢어져 안보이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기절할 정도였고 다치게 한 급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어쩔줄 몰라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분노나 슬픔, 앞으로의 걱정 등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고통이여 오라, 너를 맞으리라'는 마음가짐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눈을 꿰매고 백내장수술, 녹내장수술 등 세 차례의 수술을 하고 치료 받던 중 아랍에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온가족이 아랍에미레이트로 떠났다. 아랍에서의 일년여간은 사막과 모래뿐이었다. 이사를 간 아즈만이라는 곳엔 가도 가도 사막, 온통 사막뿐이었다. 눈다치고 조용하기만 하였던 나에게 그곳은 또 다른 고요를 주었다. 나는 말이 없어졌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우리는 안돌아 온다던 한국엘 다시 돌아왔고 나는 복학을 했다. 이미 말을 잊었던 나는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바로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아랍의 사막에서 어쩔 수 없이 느끼던 침묵과는 완전히 다른 침묵이 일어났다. 전의 침묵은 그저 말없는 침묵이었으나 이때 경험하게 된 침묵은 말이 없긴 하되 무언가 평화로운, 아주 행복한 침묵이었다. 개나리 옆에 가면 내가 개나리가 되는 그러한 침묵이었다. 버스를 타고 내리든, 학교가는 이십여분의 길을 걷든 거의 늘상 그러한 상태에 있었다. 공부시간에도 창옆에 앉아 수업은 전혀 듣지 않고 밖의 꽃과 나무들만 쳐다보며 마냥 평화로움에 빠져있었다. 지금도 왜 그러한 나를 선생님들이 혼내지 않고 그냥 두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등교길에 늘상 그러하듯이 돌을 보고 마음속으로 안녕하며 미소를 지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마음속에서 '내가 신이야.' 라는 외침이 일어난 것이다. 행복의 전율과 함께 모든 것이 명확해지면서 만상이 정지했고 그 상태에서 지복과 사랑을 보았다. 보이는 것 모두가 사랑으로 다가왔다.

고통이여 오라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할 일이 많아졌다. 술과 담배도 많이 늘었다. 점차 그 평화스러움은 지속되지 않게 되었다. 허나 그것에 별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 평화가 일부러 추구해서 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왔을 때도 그냥 그런가 보다였지 그것이 무엇인지 혹은 그것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가 대학에 진학했고 여자와 동거도 하였다. 음악을 한다며 매일 술을 먹었다. 이미 평화는 사라진 상태였다. 여자 문제는 많은 고통을 가져왔고 음악쪽으로의 진로 변경은 부모님과의 갈등을 일으켰다. 사회적으로 고통이라는 것들을 거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취직을 했다. 이때는 마음먹은 대로 직종을 바꾸고 사업을 해나간 시절이기도 했다. 떠오르면 무조건 하다보니 같은 직종이라고는 단 하나도 해본 적이 없고 전혀 다른 직종을 선택해서 사업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망하기도 하고 이혼을 하는 등 여러 고통들이 왔다. '고통이여 내게 오라' 하고 정하여놓고 그 말을 잊지 않았지만 그래도 견디기 힘든 고통들이었다. 그때서야 도대체 어렸을 때 왔던 그러한 평화로움이란 것이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들어 알고 싶어졌다.
여러가지 책을 보았다. 명상관련 서적을 보면서 그것이 삼매상태 였다고 짐작을 했다. 그때부터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관심은 온통 그쪽이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깨달음이라는 것을 몰랐으며 그러한 것을 추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렸을 때의 평화로운 상태로 다시 가고자 한 것 뿐이었다. 어렸을 때 그것이 어떻게 왔는지 더듬어보는 중에 신위와 인당, 대상을 한줄로 꿰어서 그것마저 사라지면 육체의 온전한 이완이 왔던 상태를 기억해냈다. 그것이 생각이 사라진 무심의 상태라는 것은 간과한 채였다. 노력하면 드문드문 그 상태가 왔다. 허나 온전한 평화가 아니었고 아주 약하게 드문드문 왔을 뿐이다. 그 방면의 책을 읽어가면서 깨달음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깨친 이를 찾아 네팔이나 인도 등 여차하면 해외로 나가곤 했다. 사회생활을 하긴 하되 이제 모든 관심은 깨달음 쪽에 있었다.
십 여년전 부모님이 미국에 가신다하여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갔다. 처음은 이모님 댁에서 이럭저럭 지내다가 곧 메릴랜드의 롹빌이라는 산속 아파트로 이주하였다. 차가 없던 우리에게 그곳은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새벽에는 아파트 앞에 야생사슴들이 다닐 정도로 깊은 산속이었다.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숲길을 두 아들과 함께 산책하거나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 것 뿐이었다. 점차 발코니 앞에 앉아서 사슴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헌데 그곳에서 예전의 평화로운 상태가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잠시잠시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상태는 오하이오에 사는 친구에게서 한번 놀러오라는 연락이 오고부터 또다시 깨어졌다. 부모님은 이러고 멍하니 지내는 것 보다 그편이 낫겠다며 갔다오라고 재촉하였다. 며칠 후에 오하이오로 떠났다. 산속 아파트에만 있다가 나와서인지 바깥은 별천지였다. 오하이오에 도착하니 친구가 한국인 레스토랑에서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그리도 먹고 싶던 생선회에 소주 그리고 노래방에서 날을 보냈다. 그렇게 며칠인가를 보내고 다시 돌아왔는데 그 친구가 일손이 모자란다며 도와달라는 전갈을 보내 왔다. 부모님은 대찬성하며 적극적으로 가라 하였고 그렇게 다시 오하이오를 향해 떠났다. 오하이오에선 거의 매일 술이었다. 조금 되던 평화로운 상태가 깨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삼매의 평화로운 상태와는 다른 일상적인 평화로움이 벌어질 뿐이었다. 그것은 아무 생각없는 일상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이혼하고 딸하나 있는 교포 여자를 만났다. 망년회를 하던 한국 레스토랑에서 만났는데 매력적인 그녀와 금방 친해졌다. 때마침 한국에 들어가야겠다는 부모님으로부터 내 아이들을 데려가라는 전갈이 와 있는 상태여서 아이들을 데려오고 동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는 그 생활은 우리와 아이들 모두에게 고통이었다. 특히 나의 두 아들과 그녀의 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결국 그녀는 나의 두 아들을 내보내라고 최후 통첩을 하였다. 그때 이미 미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던 나는 아이들을 먼저 한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오하이오에서 시카고까지 먼길을 차로 운전하여 가는 동안 내내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끼리 비행기에 오르면서 쏟아내는 마지막 몸부림과 눈물은 나의 가슴을 더욱 찢어 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일찍이 아내와 이혼하면서 아이들에게 주었던 고통들이 있었는데 또 한차례 고통을 당하다가 버림을 받는다고 여기며 몸부림치던 내 아이들의 모습. 이미 고통이여 내게 오라고 외치던 나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도 참기 힘든 아픔이었다.
그녀와 난 서로에게 마지막의 고통을 주고, 상처를 낼 대로 낸 상태에서 헤어졌고, 나는 왼쪽 쇠골이 분질러진 상태로 한국에 돌아왔다. 이때 가진 돈이라곤 몇 십만원 뿐이었다. 고시원이라는 데를 들어갔다. 겨울내내 병원에도 못가고 그저 누워서 뼈 붙이는데 시간을 보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일로 즉석 인쇄 장비들을 배워 베트남 전시회에 투입되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오자마자 한국전시회에도 나갔으며 그곳에서 체인점을 두군데 계약하였다. 육개월인가 계약을 하나도 못했던 그 친구 회사로선 좋은 일이었고. 내게도 들어가자 마자 성과를 보였기에 흐믓하기도 하였다.


고통이 이해되다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중에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제 미국에서의 일을 비롯해 무엇이든 다 포기했을 때였다. 바쁘게 일하는 중에도 종종 회사 바깥에 나가 길에 철퍼덕 앉아 그저 햇볕을 쬐곤 하였다. 그런데 그 고통스러웠던 일들,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던 일들이 어느새 훌훌 털어졌다는 것을 안 것이다. 고통이라는 것들이 우스워서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저 이해되어졌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어떤 특별한 이해가 와서가 아니었다. 그저 산다는 것이 이럴 수밖에 없다는 그런 느낌이 왔을 뿐이다.
그러다가 친구에게서 어음 육백만원짜리 두장을 빌려 신문에 광고를 냈으며 그것으로 체인점과 지사 두군데를 모집하였다. 바로 사천만원인가 들어왔고 그것을 밑천 삼아서 사업도 확장해 나갔으며, 그것과 다른 종류의 체인점 본사를 하나 더 내서는 다음해에 십억정도 매출을 내기도 하였다.
여하간 이렇게 생활이 피기 전, 여러 과정에서 파생된 고통들이 더욱 더 진행되고 마지막에 더 이상 어쩔수 없는 극한점까지 간 적이 있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극한 뿐 아니라, 깨달음이란 측면에서도 더 이상 그런 것은 없거나 이제 그런 것을 바랄 수 없다는 상태에까지 간 것이다. 그때서야 초심으로 돌아갔다. 열 다섯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 내가 무엇을 바랬단 말인가. 그 당시 나는 그저 이 삶을 치열하게 다 맛보고 가겠다는 것이었지. 돈이나 깨달음, 그 어떤 것을 한번이라도 바란 적이 있단 말인가. 이리도 고통스러웠건 무엇이건 내 뜻대로 하고싶은 것을 했고, 원하면 무엇이든 가차없이 했던 세월 아니었던가. 그래 이제 되었다. 맛볼만큼 맛보았다. 무얼 더 바랄까. 이제 모든 걸 다 놓아버리자.'며 놓기 시작했다. 헌데 묘한 것은 이러한 놓음은 일면 포기처럼 보였으나 포기라고 말하기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지나간 삶의 파노라마

너무도 무상하다고, 이 삶에서 무언가를 바랄 것이 없다고 느꼈다. 놓음은 일면 무소유적인 측면이 있었다. 헌데 딱히 어느 것 때문에 혹은 어느 시점에서라고 말할 수 없으나 놓고 비우며, 지나온 세월을 마치 죽을 사람이 된 것처럼 여기며 반추하던 중 내가 잘못 살아왔던 세월이 영화처럼 보였다. 십여일간 끊임없이 생생한 입체 영화처럼 살아온 나날들이 보였다. 보고는 울고 보고는 울고. 잘못 살아온 삶들, 나의 잘못된 여정 때문에 가슴 찟기는 고통을 받은 아이들, 아내, 미국의 그녀, 부모님과 주위사람들, 동생들 모든 것이 내 생각으로 지어서 보는 영화가 아니라 누군가가 보여주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였다.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팠다. 그렇게 고통을 주었던 주체가 나라는 사실에 참회하고 또 참회를 하였다. 긴 영화는 끝이 났다. 영화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삶의 여정이 무엇인지가 와 닿았다.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을 만나거나 전화로 과거의 잘못을 빌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어리석은 잘못을 안하리라고 다짐했다. 사실 다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그러한 어리석음에 대해서 깊은 참회와 이해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찌 같은 일에 또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곤 스스로를 용서했다. 일부러 용서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해가 벌어졌다. 전체의 여정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보고 느낀 것이다. 이해할 때까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들의 여정을 알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한 또 오고, 또 같은 반응을 할 수밖에 없는 이 여정. 끝내 이해할 수밖에 없고 이해해야만 끝나는 이 여정을. 그리곤 오랜만에 정말 아무 생각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저 더 비우고 더 무소유하며 더 놓았다. 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놓아버렸다. 바라는 것 없고 그저 아무생각 없이 한가로운 시간으로 보냈다.
(계속)



유경복 
본디 선과 악이 없듯 상도 무도 없음을 확인 하고 여여하다니 .보이는것만 보는이들에게
부디 본연의 참마음을 깨우는데 한발 앞서주소서....
솔직한 글 감사혀요 ~~~
 (200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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