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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습들은 외적인 자연과 우리의 내적인 자연에 다리를 놓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밖에서 보는 빛으로 가득한 외적 자연과 함께 내면의 자연을 체험하게 되면 그 내면은 또 빛으로 이루어진 의식의 바다라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연에 말걸기 워크샵을 통해 외적 자연에 대한 전일적 경외감을 회복시키고 또한 아름다운 내적 체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관련 서적 보러가기) / 관련강좌 보러가기(5인 이상이 신청하면 진행합니다)

ㆍ글쓴이  :   HereNow (2008.01.30 - 00:00)
ㆍ홈페이지  :   http://www.herenow.co.kr
  [48호] 공간과 거미줄 / 스스로 회원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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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지금여기 2003년 11/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자연에 말걸기'와 관련된 글이라 올려 봅니다.


<지금여기 발행인의 말> 중에서

공간과 거미줄

수돗물이 나오는 모양을 잘 살펴보면 꼬임의 형태로 물줄기 몇 개가 새끼줄처럼 얽혀 쏟아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이 하수구를 통해 나가는 것도 역시 소용돌이 형태로 두세 개의 물줄기가 형성되어 서로를 감아, 밀고 당기며 나아갑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컵에 물을 가득 넣고 수저로 휘저으면 이런 소용돌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반쯤 물을 넣고 저어야 물 소용돌이가 생깁니다. 즉 컵에 빈 공간이 있어야 그 공간이 하나의 물줄기를 둘로 나누는 역할을 하여 두 개의 다른 물줄기가 형성되고, 이때 두 줄기가 서로를 북돋는 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음과 양이 서로를 抑(억누르고) 揚(북돋기) 하는 관계에 있을 때 생동감이라는 것이 일어나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언어에 억양이 있는 것은 그러한 자연을 본받아서일지 모릅니다. 구별이 분명해야 의미전달이 분명하고 언어는 비로소 살아있게 되지요.
슈타이너 연구소의 랄프 마리넬리는 우리 혈액의 움직임 또한 공간으로 인해 구별되어진 두 개의 혈액흐름이 소용돌이 문양을 이룰 때 말초혈관까지 다다르는 힘을 얻게 된다고 실험을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심장의 펌프질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손끝, 발끝의 말초혈관까지 신선한 피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혈액의 흐름 자체에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다름의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보는 자연에도 수많은 공간이 있습니다. 산과 산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또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가지와 가지 사이, 잎과 잎 사이는 모두 공간입니다. 만일 이들을 갈라놓는 공간이 없다면 삶 속의 모든 다양함은 사라지고 말 것이며 구별없는 무극, 태초의 흑암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이렇듯 생명은 다양성이며 그 다름의 근본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와 똑같이,
우리 내면에서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생각, 또는 이성도 역시 공간이 필요하지요. 생각과 생각들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면 의식이라는 것이 생겨날 수 없을 것입니다. 江을 보고 생겨난 이미지와 山을 보고 생겨난 내면의 이미지가 아무런 차이도 없다면 우리는 강과 산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그것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思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내면의 다양한 풍성함과 의식의 흐름 모두는 생각과 생각, 이미지와 이미지, 느낌과 느낌을 구별시켜주는 내면의 공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간 그 자체는 구별이 없습니다. 수많은 구별을 낳는 공간 자신은 정작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고, 이것과 저것이라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빈 하늘을 고요히 올려다보고, 가지들 사이의 공간을 바람이 되어 지나가 보십시오. 거기 아무런 차이도 발견되지 않으며,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차이 없음은 오히려 충만한 삶, 差異로 가득한 다양한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생명은 빈 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내면의 풍성한 사고와 의식의 배경에도 구별없는 텅 빈 공간이 있습니다. 생각과 생각 사이, 느낌과 느낌 사이 그 모든 곳에 그들을 구별시켜주는 공간이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생명에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공간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회오리와 돌풍에 파도는 일렁이고, 비바람에 나무는 꺾이지만 공간을 어쩌지는 못합니다. 생명은 따스한 햇살로 얼음을 녹이며 어여쁜 새순을 돋게 하고 화려한 꽃을 피우지만 공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평온이라고도 할 수 없는 평화만 있습니다.
내면에서도 그와 똑같은 일이 일어남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즐거움과 기쁨, 슬픔과 비통함이 일렁이고, 때로는 폭력의 광기, 환희와 엑스터시가 일어나지만 그것들이 일어나는 사이 사이에 있는 공간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

그런데 이렇게 서로를 구별지어주는 공간만 있는데 개별적인 생명은 어찌 그리 서로를 어여삐 여기기도 하고 때로는 미워하며 밀쳐내는 것일까요? 구별되어진 이들은 그저 분리만 되어있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는 이들 각자는 共生이라는 법칙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에만 애쓴다면 '적자생존'이라는 관점이 옳겠지만, 좀더 전체적인 눈으로 보면 공생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간과 심장 사이에는 분명 공간이 있으며 따라서 서로 다른 개체이고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활동합니다. 즉, 肝 자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겠지요. 그러나 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모두 하나의 유기체에 부분으로 존재함을 보게 됩니다. 이때 간의 애씀은 몸에 대한 기여로 보여지게 됩니다.
자연을 이렇게 보면 공생의 측면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이를테면 날다람쥐는 나무에 구멍을 파고 害하는 것 같지만 나무뿌리에 기생하는 곰팡이를 먹이로 삼고, 곰팡이는 다람쥐 털에 묻어 다른 먼 곳으로 포자를 이동시키며, 나무는 이들의 배설물을 또 자양분으로 삼습니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공생과 보이지 않는 공생 등으로 삶은 가득 차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생명그물이라 부릅니다. 이전에는 먹이사슬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바로 그 생명의 거미줄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 일부가 끊어지면 전체가 흔들리고 고립되며 슬픔이나 고독을 느끼지만 온전히 연결되어 있으면 조화로움과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공간을 자각하고, 그 공간에 기초하여 생명의 거미줄을 이어가는 이. 우리는 그런 온전한 이를 위해 스스로 모임을 갖습니다.

                                                        - 沅 -

[관련강좌]
- 자연에 말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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