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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글쓴이  :   진사모 (2007.10.30 - 00:00)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죽음에 관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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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필드의 "The Reluctant Messiah"에서 발췌

이 글은 뉴욕 패러곤 하우스사에서 발간된 시드니 필드의 "메시아가 되고 싶지 않은 메시아"에서 발췌한 것이다.   시드니 필드는 크리슈나 무르티와 가까운 친구였으며  이 책은 그가 크리슈나와 가졌던 만남에 대한 것이다. 이책  p117에서 시드니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형제인 존은 1972년 1월 초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고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존은 사진 작가였고, 모험과 여자와 술을 즐겼으며, 위대한 라틴인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도 나만큼 크리슈나지(크리슈나 무르티)를 알고 지냈으며, 개인적인 모험과 이야기들로 여러번 크리슈나지를 기쁘게 했었다. 크리슈나지는 유럽으로 부터 돌아와 말리부의 짐발리스트 여사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해 슬픈 소식을 전한 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다음날 점심때 와 달라고 했다.

그는 매우 자애롭게 나를 맞았다. 식탁에서 나는 직선적으로 질문했다. " 존이 육체적으로는 죽었지만 더 미묘한 형태로 살아있을까요 ?  '예'인가요, '아니요'인가요 ? "  잠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나는 계속했다.  " 저에게는 그가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다고 느껴집니다. "

" 물론 그는 바로 여기 당신 곁에 있습니다, " 크리슈나지가 말했다. " 그는 당신과 매우 가까이 있으며, 얼마 동안은 그것이 계속될 것입니다. "  두시간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죽음과 그 이후 라는 주제에 깊이 몰입해 있었다. 그는 육체적인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아 있는 인격의 그 부분을 신지학자들이 부르는 아스트랄 신체라고 하는 대신에 하나의 반향, 메아리라고 말했다. 그것은 지구에 살았던 사람의 메아리이며, 그 다른 쪽의 삶인 메아리의 존속기간은 세상에서 개인의 인격이 얼마나 강했는가에 달려있다고 했다. " 예를 들어 베산트 박사의 반향은 오랜 기간 계속될 것입니다. 그녀가 아주 강한 인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고 그가 말했다.

" 그 점에 있어 당신의 관점은 신지학과 매우 비슷하군요." 하고 내가 말했다.

" 한가지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지요." 하고 그가 대답했다. " 육체적 죽음 이후에 살아남는 영원한 실체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 에고가 1년이나 10년, 또는 백만년을 지속한다 해도 그것은 결국 종말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이날의 대화는 죽음과 그 이후의 삶에 관해 그가 말한 것 중에서 가장 선명하고 나에게 깨우침을 주는 것이었다. 우리의 대화가 끝났을 때 짐발리스트 여사는 이것을 녹음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다고 했다. 왜냐하면 내쪽에서 끈질긴 질문을 해댔고, 엄밀히 그 대답을 탐색했으며 공감한 짐발리스트 여사의 도움을 받아 크리슈나지가 우리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이 매력적인 주제를 탐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할 때 크리슈나지는 비범한 회상능력을 사용하신다. 며칠 후 그와 노드(Alain Naude) 그리고 짐발리스트 여사는  그 대화 전부를 재창조 해내었다. 이번에는 이것을 기록했고, 내가 했던 질문을 그대로 노드가 했다.  그것은 자연히 좀더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노드의 질문은 차분했고 지성적이었다. 그 당시 상처받고 있던 나의 절박함과 강렬한 감정은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록을 들었을 때 나는 매혹되었다. 아직 출판되지 는 않았지만 그 대화를 들은 사람들은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크리슈나지는 나의 기억과 함께 이 대화를 출판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 다음의 대화이다.


존 필드의 죽음 이후 행한 대화

참석자: 크리슈나 무르티, 얼라인 노드, 메리 짐발리스트
기록일: 1972년 1월 14일


Krishnamurti :
요전날 시드니 필드가 나를 보러 왔다고 했지요. 그의 형제인 존이 최근 사망했습니다. 당신도 그를 알지요. 그는 존이 의식의 다른 층에서 살고 있는지 매우 관심 있어 했습니다. 다음 생에서 태어날 실체로서의 존이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환생을 믿는지, 또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고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질문을 했지요. 그는 존의 죽음으로 매우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존을 사랑했고 우리도 여러 해 동안 알고 지냈지요. 그 대화 속에는 두 가지 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영원한 에고가 있는가 ? 만일 그런 것이 영원한 것으로 존재한다면 현재에서 미래에까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 여기서 미래란 10년 후라든지 또는 다음 생애를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영원한 에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고 또는 믿고 주장한다면 그땐 환생이.......
Alain Naude :
.... 불가피하겠군요.
K :
불가피한 것이 아닙니다. 불가피하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그럴싸해집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 영원한 에고란  , 만일 그것이 영원하다 해도, 10년 안에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년 안에 그것은 다르게 육신화 할 수 있습니다.
A :
그것은 인도 경전들에서 언제나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생을 기억하는 어린아이에 대해 읽으며 , 어린 소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요 ? 내 집은 다른 마을입니다. 나는 결혼했지요. 나에게는 3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 그리고 많은 경우에 저는 이런 일이 사실로 증명되어 왔다는 것을 믿습니다.
K :
모르겠습니다.  만일 영원한 실체가 없다면 환생이란 무엇일까 ? 영원한 실체든, 환생이든 둘 다 시간을 포함하고 있고, 둘 다 공간속의 이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간은 주변환경이고, 관계이며, 압력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시간과 공간의 범위 안에 있습니다.
A :
시간과 일시적인 환경의 범위 안에 있습니다
K :
즉 문화와 그밖의 것들 등등
A :
그것은 어떤 종류의 사회적 구조물 안에 있습니다
K :
그래서 영원한 나라는 것이 있습니까 ?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나 시드니는 말했지요. "그러면 제가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 존이 저와 함께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제가 방에 들어가면 존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자신을 속이고 있지 않습니다. 상상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 저는 어제 그 방에 있던 누이를 현재 느끼는 것과 같이 존을 느낍니다. 그것은 그만큼 명확하고 분명합니다. "
A :
그런데 선생님께서 "분명히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그 점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k :
잠시 기다리세요. 그는 말합니다. " 저의 형은 거기 있습니다."  물론 그는 거기에 있다고 나는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은 존과의 친분과 존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투사됩니다. 그리고 그 투사는 당신의 기억입니다.
A :
그러므로 그것은 나와 그의 안에 담겨 있던 존이군요.
K :
그리고 존이 살았을 때 그는 당신과 친분관계를 가졌지요. 그의 현존이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당신은 그를 하루 종일 보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현존은 그 방안에 있었습니다.
A :
그의 현존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도 사람들이 말하는 오라라는 것이군요.
K :
아니요. 오라는 다른 것입니다. 아직 그 얘기는 끌어들이지 않기로 하지요.
Mary Zimbalist :
제가 잠깐 말해도 될까요 ? 당신이 그가 그 방안에 있었다고 말할 때, 살아 있든 죽었던지 간에 말입니다, 거기에 있던 존이나 그의 누이에게 외적인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 아니면 그것은 그들의 의식 속에 있었나요 ?
K :
그것은 그들의 의식 안과 의식 밖 두 군데 다 있습니다. 나는 나의 형을 투사할 수 있으며 그가 나와 함께 있었음을 느끼며 그는 지난밤에 나와 함께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나로부터 방사되어 나오는 지도 모릅니다. ; 또는 10일전에 죽은 존, 그의 분위기, 그의 생각, 그의 행동방식이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고 없다해도 여전히 거기에 남아 있습니다.
A :
심령적 타성이군요.
K :
물리적인 열로서 입니다.
Z :
인간이 방사해 내는 새로운 에너지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할 ?
K :
많은 차들이 주차했던 주차장을 찍은 사진이 있었습니다. 찍을 당시는 차가 없었는데 차의 형상이 찍혔었죠.
A :
예, 저도 보았습니다.
K :
그것은 자동차가 남겨 놓은 열이 사진 원판에 나타난 것이죠.
A :
우리 모두가 지스테드에 있을 때, 처음으로 제가 당신의 손님이 되었었죠. 우리는 르카피르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우리보다 먼저 미국으로 떠나셨고 저는 그 공동주택으로 들어갔었죠. 당신은 살아 계셨고 또한 미국으로 가고 계셨는데 당신의 현존이 그 공동주택에도 있었습니다. 아주 강하게 말이죠.
K :
바로 그것입니다.
A :
당신의 현존은 너무나 강해서 어떤 이는 당신을 만질 수 있다고 느끼기도 했지요. 제가 그 공동주택으로 들어가기 전에 당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K :
그러므로 세 가지 가능성이 있군요. 나는 기억과 의식으로부터 존을 투사할 수 있으며, 또는 존의 남은 에너지를 잡기도 합니다.
A :
오래 동안 머무르는 냄새와 같은 것이죠.
K :
존의 생각이나 존의 존재는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
A :
그것이 세 번째 가능성이죠.
Z :
존의 존재라는 것은 무슨 뜻이죠 ?
A :
존은 죽기 전처럼 정말로 거기에 있다 ?  세 번째 가능성인가요 ?
K :
나는 여러 해 동안 한방에서 삽니다. 그 방의 현존은 나의 에너지, 생각, 느낌들을 담고 있습니다.
A :
그것은 자체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집으로 이사갈 때 당신이 이전 주인을 알지 못해도 그 사람의 분위기를 완전히 없애기 까지는 때때로 꽤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K :
그것들이 세 가지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하나는 존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존은 삶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존의 욕망들은 방이 아니라 공기 속에 있습니다.
A:
비물질적으로....
K :
그렇습니다. 그것들은 생각과 똑같이 거기에 있습니다.
A :
그것은 존이 의식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나요 ? 자신을 존이라 부르는 자각적인 존재로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
K :
글쎄요, 그건 좀 의심스럽군요.
A :
환생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K :
자 이것을 보세요. 네 개의 가능성이 나왔지요. 물리적 육체가 사라진 존이 생각 속에 존재한다는 사상이죠.
A :
그 자신의 생각 속인가요, 아니면 어떤 다른 사람의 생각 속에 ?
K :
그 자신의 생각 속에.
A :
생각하는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말씀입니까 ?
K :
생각하는 실체가 존재하는 것과 같이...
A :
의식적인 존재로서....
K :
잘 들어 주십시요. 그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존은 그 자신이 비속하고 탐욕적인 세계, 질투와 음주와, 경쟁의 세계이기 때문에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일상적 패턴이죠. 그것은 계속되며 존은 아마도 그것과 동일시 되었거나 그것이 거나 하겠지요.
A :
존은 욕망들이고, 생각, 신념과 친분관계들 입니다.
K :
그것들은 세상의 소유죠.
A :
육신화이고, 물질적이죠.
K :
그것은 세상이며 또한 모든 사람입니다.
A :
이것은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좀더 잘 설명해 주시면 좋겠군요. 존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씀하실 때 존은 자신 안에 세속의 계속성이 있기 때문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적, 물질적 관계를 가진 세속말입니다.
K :
그렇습니다. 공포와 욕구, 지위..
A :
하나의 실체로 있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K :
그런 것이 세계의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에 세계는 육신화 합니다.
A :
세계가 육신화 한다는 말씀은 ?
K :
대다수 사람들을 보십시요. 그들은 이 흐름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 흐름은 계속됩니다. 나는 그 흐름의 일부분인 아들을 하나 가질 수 있으며 그 흐름 속에 존도 있습니다. 그 흐름에 사로잡힌 인간 존재로서 말이죠. 그리고 나의 아들은 존의 태도 중 일부를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A :
아 ! 당신은 뭔가 다른 것을 말씀하고 계시군요.
K :

A :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존에 대한 모든 기억 속에 존이 담겨 있다고 말씀하시는 군요. 그 점에서는 그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얼마 전에 죽은 친구 한 사람을 기억하는데 그 사실을 생각할 때는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그가 매우 많이 살아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명확하기 때문이죠.
K :
바로 그것입니다.
A :
그러므로 그는 세계에 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사건의 흐름 속에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그와 관계했던 다른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아마도 그가 영원히 살아 있을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K :
그 흐름으로 부터 탈출하지 않는 한 그렇겠지요. 세속적이지 않은 사람 -- 탐욕, 질투, 권력, 지위, 증오, 욕망... 이 모든 것을 지칭하는데 세속적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로 하지요.-- 그것을 세속이라 부르기로 하지요. 내가 세속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는 한 모든 세속성, 인간의 모든 세속성을 표현하기를 계속할 것입니다.
A :
예, 나는 그것을 추구하고, 사실 그 안에서 육신화 하며 그것에 생명을 줌으로써 세속성이 계속될 것입니다.
K :
그러므로 나는 그 세속성 속에서 육신화 합니다. 즉, 먼저 나는 나의 형인 존을 투사할 수 있습니다.
A :
내 생각과 상상을 통해서, 또는 그를 기억함으로써 말이죠, 두 번째는 주위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의 활동적 에너지를 집어 낼 수도 있습니다.
K :
그의 냄새, 그의 풍미, 그가 한 말 등
A :
책상 위의 피다만 담배, 반 쯤 쓴 편지..
K :
그 모든 것이죠.
A :
정원에서 그가 꺽은 꽃들
K :
세 번째는 방에 남아 있는 생각입니다.
A :
생각이 방에 남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
K :
느낌들......
A :
그의 활동적 에너지에 상당하는 심령적 등가물이라고 하는 것인가요 ?
K :

A :
그의 생각은 거의 물질적 냄새로 남아 있습니다. 물리적 냄새로.
K :
맞습니다.
A :
생각의 에너지는 당신이 걸어 놓은 오래된 외투와 같이 남아 있습니다.
K :
생각과 더불어 의지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일 그가 아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말이죠. 활동적인 욕망과 생각, 이들 또한 남습니다.
A :
그러나 그것은 세번째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이것이죠. 생각은 남는다. 그것은 의지이기도 하고, 욕망이기도 하다.
K :
네 번째는 세속성의 흐름입니다.
A :
그 말씀은 명확하지 않군요.
K :
보세요. 나는 수백만의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갑니다.
A :
예, 목적을 추구하고, 희망하며, 두려움에 떨지요.
K :
나는 일반적 삶을 살아갑니다. 좀더 세련되고 더 높거나 낮을 수는 있지만 이 모두가 같은 흐름 속에서입니다. 나는 그 흐름을 따르고 있습니다. 나는 그 흐름입니다. '나' , 그 흐름인 나는 그 흐름 속에서 계속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나는 수백만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A :
그러므로 죽었다 해도 나는 계속됩니다. 나였던 사물들이 계속되기 때문에.
K :
인간존재 안에서 이죠.
A :
그러므로 나는 살아 남습니다. 나는 나의 삶을 채우고 선점했던 것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K :
그렇습니다.
A :
나의 삶을 채우고 점유했던 이것들이 살아 남기 때문에,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나는 살아 남습니다.
K :
맞습니다.  그것이 네 번째 가능성이죠.
A :
문제는 다섯번째에 관한 것입니다. 자신을 땅속에 묻는 사람들이 " 불쌍한 존이 가는 군. " 하고 말할 때, 자신이 의식하고 있음을 아는 의식적 실체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비물질적으로 " 참 친절하게도 나의 육체를 묻어주고 있군 그러나 나는 살아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 라고 말하는 의식적 실체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K :
그렇습니다. 그것이 다섯번째 가능성이죠.
A :
그것이 제가 대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질문입니다.
K :
시드니도 그것을 묻고 있었지요.
A :
왜냐하면 우리는 죽은 후 모든 사람이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는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K :
자 이제 당신은 그 질문을 하고 있군요. 육체가 불타 화장되어버린 존, 그 실체가 계속해서 살아있는가 ?
A :
그 실체는 자신의 존재를 계속해서 의식합니까 ?
K :
먼저 분리된 존이 있는지를 질문하고 싶군요.
A :
처음 당신은 영원한 에고가 있는가에 대해서 "분명히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K :
당신이 존은 죽었다고 말할 때, 그리고 그는 살아있는가 하고, 분리된 의식으로 살아있는가 하고 물을 때 나는 그가 언제 그 흐름으로부터 분리된 적이 있었는지 어떤지를 묻는 것입니다.
A :

K :
내 말을 잘 따라 오고 있습니까 ?
A :
존은 살아있지 않았습니까 ?
K :
존이 살아 있을 때 그는 그 흐름과 달랐습니까 ?
A :
그 흐름은 자신을 의식하는 그를 채웠고, 그의 의식은 자기자신을 아는 흐름이었지요.
K :
아닙니다. 좀 천천히 가볼까요. 그것은 좀 복잡합니다. 인간성의 흐름은 분노와 증오, 질투, 권력과 지위를 구하고, 속이며, 타락하고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흐름입니다. 나의 형 존도 그 흐름의 일부입니다. 그가 물리적으로 존재했을 때, 그는 물리적 육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이 흐름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흐름과 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까 ? 또는 오직 물리적으로만 달랐고 따라서 그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뿐일까요 ? 내 말의 요점을 아시겠습니까 ?
A :
자아의식을 가졌던 실체가 있었.........
K :
존으로서.....
A :
그는 자아의식이 있었고, 그 흐름은 그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K :

A :
나의 아내, 나의 아이, 나의 사랑.
K :
그러나 존이 내적으로 그 흐름과 달랐습니까 ? 그것이 나의 요점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것은 육체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의 일부로서 존은 존속합니다. 그의 동생으로서 나는 분리된 존재로 그를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물리적으로 분리된 존재로 나와 함께 살았기 때문입니다. 내적으로 그는  그 흐름의 소유였습니다. 그러니 그 흐름과 다른 존이 있었나요 ? 그리고 만일 그가 달랐다면 그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잘 따라오는지 모르겠군요.
A :
외부로부터 보는 흐름이 있고, 내부로부터 보는 흐름이 있습니다. 거리에서 보이는 세속성은 그 세속적인 순간에 자신이 행위하고 있음을 느끼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나는 누군가를 모욕합니다. 이것은 세속적입니다. 당신은 그 세속성을 외부에서 봅니다. 그리고 세속적 행위가 있구나 하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모욕을 주고 있는 나는 그 행위를 다른 방식으로 봅니다. 내가 모욕을 주는 순간에 나는 자아의식적으로 삶을 느낍니다. 사실 나에 대한 의식적 사고작용이 있기 때문에 나는 모욕을 줍니다. 나는 자신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욕을 주는 것이죠.
K :
내 요점은 그것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 흐름 속에서 수영하고 있다면 나는 차이가 있을까요 ? 실제의 존이 그 흐름과 차이가  있습니까 ?
A :
그러면 존이란 자체가 있기나 했나요 ?
K :
그것이 바로 나의 요점입니다.
A :
자신을 존이라 느끼는 의식적 결정이 있었습니다.
K :
예, 그러나 나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다르다"는 창조적 상상을 해낼 수 있습니다.
A :
자신을 존이라 부르는 상상과, 생각이 있었습니다.
K :
바로 그렇습니다.
A :
그러면 이제, 그 생각은 여전히 자신을 존이라 부르나요 ? (죽은 후에도)
k :
그러나 나는 그 흐름에 속해 있습니다.
A :
당신은 항상 그 흐름에 속해 있습니다.
K :
나의 형이었던, 그리고 지금은 죽은 존으로서의 분리된 실체는 없습니다.
A :
개인이란 없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
K :
예. 이것은 우리가 영원한 에고라 부르는 것입니다. 영원한 에고란 바로 이것이죠.
A :
우리가 개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K :
개인, 집단, 자아
A :
예, 자신을 '자아'라고 부르는 생각의 창조입니다.
K :
그것은 이 흐름 속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A :
맞습니다.
K :
그러므로 존이란 사람이 있은 적이 있습니까 ? 그가 그 흐름으로 부터 빠져 나왔을 때만이 존은 있는 것입니다.
A :
옳습니다.
K :
우리는 육신화 하는 영원한 에고가 있는지를 찾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A :
에고는 본성상 영원하지 않습니다.(에고는 '나'라 불려지고, 상상되어지고, 창조된 생각-- 이미지 입니다.)
K :
환생이란 생각은 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현대인들은 영원한 에고가 있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여러 생을 살고 그래서 마침내 녹아 브라흐마에게 흡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처음부터 영원한 실체라는 것이 있었나요 ? 몇 세기를 걸쳐 지속되는 실체 말입니다. 그런 영원한 실체는 분명히 없습니다.  나는 내가 영원하다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나의 영원성은 나의 가구, 나의 아내, 나의 남편, 주변환경 등과 동일시 됩니다. 이것들이 말들이고 생각속의 이미지들인 것입니다. 나는 실질적으로 저 의자를 소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나의 것이라고 부릅니다.
A :
바로 그렇습니다.  저것은 의자이고  저것은 내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K :
나는 저것은 내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A :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하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K :
주의깊게 지켜 보싶시요. 그러므로 영원한 자아란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자아가 있다면 그것은 이 흐름이겠지요. 이제, 나는 세계의 모두와 다를 바 없고, 분리된 크리슈나무르티나 존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때 그 흐름 밖으로 나온다면 육신활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흐름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을 때 변화란 일어날 수 있다는 관점에서의 육신화 말입니다. 그 흐름 속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A :
영원성이 있다면 그것은 흐름의 밖에 있겠군요.
K :
아닙니다. 영원함, 또는 반영구적임 등도 그 흐름 속에 있는 것입니다.
A :
그러므로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것이 영원하다면 그것은 흐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실체가 있다면 흐름밖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인 것, 영원한 것은 어떤 무엇이 아닙니다.
K :
그것은 흐름 속에 있지 않습니다.
A :
맞습니다.
K :
노드씨가 죽을 때 그가 흐름에 속하는 한 그 흐름은 반 영구적입니다.
A :
예, 그것은 계속됩니다. 그것은 역사상의 일이지요.
K :
그러나 노드씨가 나는 다음 생이 아니라 지금 육신화 하겠다라고 말한다면 , 그것은 나는 그 흐름에서 벗어나겠다란 뜻입니다, 그때 그는 더 이상 흐름에 속하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영원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A :
환생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환생이 만일 가능하다면 환생하는 것은 어쨌든 영원하지 않습니다.
K :
아니요, 그것은 흐름입니다.
A :
그것은 매우 일시적인 것입니다.
K :
그것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십시요. ( 일시적이든, 영원하든 그 모두가 '흐름'속에 있는 것들일 뿐입니다. 크리슈나지는 매우 답답합니다. 이해하는 듯하다 다시 생각속으로 빠져드는, 다시 흐름 속으로 빠져드는 노드씨를 볼 때 자신의 반생의 노력이 헛되다는 것을 실감 합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반생의 노력이라는 것 역시 '흐름'속에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죠. 크리슈나지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말들이 현재의 노드씨를 '그 흐름'속에서 빠져 나오게 하려는 시도라는 것을 노드씨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A :
분리된 실체는 실재가 아닙니다.
K :
그렇습니다, 내가 그 흐름에 속해 있는 한......
A :
나는 진정으로 존재하고 있지 못합니다.
K :
분리된 실체란 없습니다. 나는 세계입니다.
A :
맞습니다.
K :
내가 세계 밖으로 나올 때 거기 계속될 '나'라는 것이 있을까요 ?
A :
바로 그렇군요.  아름답습니다.
K :
그래서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은 그 흐름의 존재를 정당화 하는 것입니다.
A :
그것이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
K :
물론입니다. 나는 많은 삶을 거쳐왔음에 틀림없어 라고 말한다면 이제, 나는 그 흐름을 뚫고 지나가야 합니다.
A :
우리는 그 흐름과는 다르다는 것을 정립하려고 하는 것이군요.
K :
우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A :
우리는 그 흐름과 다르지 않습니다.
K :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만일 영원한 존이나 크리슈나므르티, 노드, 짐발리스트가 없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당신은 기억하시지요 ?  티벳전통인가 아니면 다른 전통에 관한 것에서 읽은 것 같은데,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때 사제나 승려가 들어와서 모든 가족들을 내보내고 문을 잠근후 그 죽어가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 보세요, 당신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버려두십시요. 당신의 모든 적개심, 모든 세속적인 마음들과 모든 야망을 보내 버리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이 그 모두를 버리면 당신은 빛을 만나고 그 빛에 흡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 흐름 속으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당신은 또 다시 그 흐름이 될 것입니다."
A :

K :
그러니 당신이 그 흐름을 벗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A :
당신은 흐름에서 벗어납니다. 당신은 존재하기를 멈춤니다. 생각에 의해 창조되었을 뿐인 당신은 멈추어 버립니다.
K :
그것은 흐름입니다.
A :
세속성이죠.
K :
세속성입니다. 당신이 그 흐름에서 벗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육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벗어난다는 것은 당신이 새로운 것으로 들어감을 말합니다. 존재의 새로운 차원인 것입니다.
A :

K :
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 따라오고 있나요 ? 노드는 그 흐름 속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요 ? 당신은 예술가가 아닙니다. 당신은 사업가가 아닙니다. 정치가도 음악가도 아닙니다. 그 모든 동일시는 흐름의 일부입니다.
A :
그 모든 특질들
K :
모든 특질들, 당신이 그 모든 것들을 버릴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 (크리슈나지는 노드씨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가서는 빨리 더 나아가 보라고 말합니다. 그는 노드씨에게서 무슨 답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노드씨의 변형을 바라는 것이죠.  이것이 그의 공안입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이 공안은 노드씨를 다그칩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라고 말해놓고 더 가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차원의 변형을 부르는 다그침 입니다.)
A :
당신은 아이덴터티(자기 동일시)가 없습니다.
K :
아이덴터티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 또는 이들 소위 세계의 지도자들은 살인을 하고 학살 및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끔찍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그 흐름 속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그 흐름의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흐름의 밖으로 나선 사람이 있습니다.
A :
물리적으로 죽기 이전에 말입니까 ?
K :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이야기의 요점이 없는 것이지요.
A :
그러므로 또 다른 차원이 탄생합니다.
K :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A :
우리에게 익숙한 차원이 끝나고 다른 차원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주장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주장이란 우리가 속해 있는 차원의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K :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지금 살아있는.....
A :
그것 밖으로 나옵니다.
K :
그 흐름 밖으로 나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A :
죽음입니다.
K :
아닙니다.
A :
이것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물리적 죽음은 아닙니다.
K :
당신은 그 흐름 밖으로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A :
무슨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질 수가 없습니다.
K :
기다리세요. 우리중 아무도 그 강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 강으로부터 피안에 이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A :
그것은 깨어 있으면서 깊은 잠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K :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흐름에 속해 있습니다.  인간은 그 흐름에 속해있으며 그 흐름으로 부터 저쪽 언덕으로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강을 결코 떠나지 않고 말이죠. 이제 그 사람은 말합니다. 좋다. 나는 이것의 거짓됨을 알았다. 내가 위치하고 있는 곳의 불합리함을 알았다.
A :
옛날 차원에서는 결코 다른 차원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K :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떠납니다. 그래서 마음은 말합니다. " 나가라 ! " . 그는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말로 표현하지 마십시요.
A :
흐름속의 용어로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침묵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흐름의 침묵이며, 또한 그것은 흐름이 죽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흐름의 용어로 그것은 망각이라 불리우는 어떤 것입니다.
K :
흐름밖으로 나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 인격(성격-특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A :
기억이 없습니다.
K :
그게 아닙니다. 인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인격을 가지고 있는 순간 그것은 흐름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신은 덕이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그 흐름의 소유입니다. 덕이 없다라고 말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흐름밖으로 나오는 것은 이 전체 구조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는 창조는 흐름안에 있습니다. 당신이 추종하는 모짜르트, 베토벤, 화가들, 그들은 모두 이 흐름안에 있습니다.
A :
선생님 제가 생각하기에 때때로 흐름 속에 있는 것은 그 너머의 무엇으로부터 활기를 얻는 것 같습니다.  (아니 웬 망발인가 ? 노드씨는 도대체 크리슈나지의 말을 따라가고 있는가요 ? 사람의 머리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는 크리슈나지의 다그침에 지쳤습니다. 벌써 크리슈나지는 해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노드씨에겐 해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크리슈나지는 다시 한번 시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벌써 여러 번을 시도했지만 노드씨는 무심속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 아 이제 나는 지쳤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  " 그때 그는 주제에서 벗어난 것 같지 않은, 그러나 분명히 벗어난 모짜르트와 베토벤에게로 주의를 돌렸습니다. 그는 좀 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자 크리슈나지는 주의를 줍니다. 그렇지 않습니다.하고 말이죠.)
K :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말들을 하지 마십시요. 왜냐하면 흐름 안에서 나는 창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믿지못할 만큼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왜 안되겠습니까 ? 나는 매우 특출난 심포니를 작곡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테크닉을.....
A :
왜 그들은 특출난 것입니까 ?
K :
세계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필요가 있고 ,요구가 있으며 그리고 공급이 있습니다. 나는 정말 흐름 밖으로 나온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자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여기 강속에서, 흐름 속에서, 에너지가  상충하는 곳에서, 모순과 투쟁속에서, 세속성 속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계속되고 있습니다.
A :
당신과 나.
K :
그렇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 밖으로 나올 때, 갈등은 없고, 나의 나라, 당신의 나라라는 분별도 없습니다.
A :
분별이 없습니다.
K :
분별없음. 따라서 그 사람의 특질, 분별심이 없는 그 마음은 무엇일까요 ? 그것은 순수한 에너지 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 우리의 관심은 이 흐름이며, 그것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A :
그것이 명상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명상입니다. 왜냐하면 그 흐름은 생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흐름은 완전히 기계적입니다.
K :
나는 그 흐름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A :
언제나
K :
언제나. 그러므로 나는 부정해야 합니다.-- 아니 부정이 아닙니다. 나는  그 흐름안에 있는 존에게 말려들어서는 안됩니다.
A :
사람은 그 흐름속의 것들을 거부해야 합니다.
K :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나는 나의 형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A :
나는 형제를 갖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
K :
나는 나의 형이 이 흐름에 속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내가 그 흐름으로부터 비켜설 때 나의 마음은 열립니다. 나는 그것이 자비라고 생각합니다.
A :
흐름 밖에서 흐름이 보여질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K :
흐름속의 사람이 밖으로 나와서 볼 때 , 그는 자비심을 갖게 됩니다.
A :
그리고 사랑도.
K :
그러므로 환생은, 즉 자꾸 반복해서 육신화하는 것은 그 흐름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이 그리 크게 위안이 되지는 않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가서 나의 형이 어제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당신은 나에게 이런 말들을 해줍니다. 나는 당신을 정말 잔인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을 위해 울고 있으며, 나를 위해 울고 있고, 그리고 그 흐름을 위해서도 울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형이 어디 있는 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가 애초부터 존재했는지 안했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말입니다.


영어 원본이 있는 곳 : http://flp.cs.tu-berlin.de:1895/excerpts/sfield-ap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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