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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글쓴이  :   김경덕 (2016.10.10 - 10:08)
  망각된 거인의 사상 … ‘정신철학’, 새로운 연대기를 쓰다
서우는 크게 정신, 심리, 도덕, 정치의 네 방면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그의 정신철학은 중세 성리학과 근대 이성주의를 모두 넘어서고,
마침내 신체성을 회복한 인간 정신의 근원으로 들어간다.

    
      
  

고백컨대 책을 쓰기보다, 내가 쓴 책에 대해 말하기가 한결 곤혹스럽다. 제삼자가 평론하듯이 짐짓 공정한 척하며 말하는 건 계면쩍다. 해서 서평보다는 감회를 쓰고, 독백하기보다는 독자들에게 말을 걸려고 한다. 『우주의 정오』는 내게 어느 한가지로 규정짓기 어려운 책이다. 뿌리줄기(rhizome)처럼 문맥이 뻗어나가고, 변검(變瞼)처럼 여러 얼굴을 가졌다. ‘서우 전병훈과 만나는 철학 그리고 문명의 시간’이라는 부제가 그나마 이 책을 설명하기에 유용하다.


책에서 ‘서우 전병훈’을 시종일관 논구했다. 하니 그에 관한 연구서가 틀림없다. 그러나 내게 전병훈은 단지 거리를 두고 진술하면 그만인 그런 무미건조한 연구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만나는 철학’이 된다. 그것은 20세기 초의 전병훈이 동서고금의 위대한 철학들을 만나서 한 용광로에 녹여내는 놀라운 철학적 해석학이다. 동시에 그런 전병훈의 철학을 21세기로 불러오고 그를 통해 옛날과 지금의 철학을 다시금 만나는 필자의 철학적 해석학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서우를 발판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고금동서의 지혜와 경험을 충당하는 철학적 기행문이 된다.


내게 2016년 8월은 유사 이래 미증유의 강렬하고도 긴 폭염과 함께, 서우와의 여정에 끝내 한 점의 마침표를 찍은 ‘우주의 정오’로 기억된다. 20여 년 전 베이징대도서관 귀중본 자료실에서 『정신철학통편』 초간본을 열며 전병훈을 처음 만났고, 집필을 시작한지 6여년 만에 1천248쪽의 책을 상재했다. 여행길이 꽤 길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키는 대로 쏘다니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린 한가한 여정은 결코 아니다. 거기에는 ‘문명의 시간’을 향하는 뚜렷한 일관성이 있다. 서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우주의 정오(五會正中)를 맞아 문명이 극치에 이르는 때”를 겨냥한다.

도래할 시대를 위한 철학
우주적인 주기에서 자연법적 시간대가 흐른다. 그리고 근대 물질문명의 극치에서, 다시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명의 새벽이 밝아온다. 인간에게 내재된 정신, 심리, 도덕의 잠재적인 측면들이 드러나고 그 역량이 최고도로 진화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형제가 되는 사해동포의 박애정신이 되살아나고, 민주적인 세계통일공화정부를 건립해 영구평화를 실현하는 대동과 태평의 정치적 이상이 구현된다. ‘우주의 정오’란 제호가 함축하는 것은, 그런 어떤 ‘도래할 시대를 위한 철학’이다.
이런 철학의 문법은 20세기 한국의 아카데미철학, 그리고 인문학 담론에서 꽤나 생소한 것이다. 따라서 돌연한 ‘우주의 정오’에 당혹하고 의혹의 시선을 보낼 독자들이 적잖을 것이다. 전병훈이 대체 누구고, 문명사적 철학은 또 뭐란 말인가? 그러니 서우에 대해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全秉薰(1857∼1927)은 평안도 태생이며, 동아시아 근대의 여명기에 한국과 중국을 무대로 활동했던 국제적인 철학자였다. 그는 젊어서 유학자로 이름을 떨쳤고, 40대 중반에 정3품 통정대부의 관직까지 올랐다. 그러나 을사조약이 체결되고(1905), 고종이 폐위되는(1907) 국난을 겪으며 마침내 중국으로 망명한다. 당시 그의 나이가 이미 50세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는 도교에 심취했고, 일찍이 抱朴子가 도를 닦아 유명해진 廣東의 뤄풔산(羅浮山)에 들어가 내단학을 연마한다. 이후 1913년 베이징으로 이주했으며, 수련한지 10년 만에 도가 성취되는 증험을 얻는다. 하지만 그는 신비체험이나 도력을 앞세우는 속된 수련가나 도사가 아니었다. 대신 자신의 득도를 보편적인 학문으로 승화했고, 그 과정에서 도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불교 그리고 당시 중국에 막 소개된 서양철학까지 망라하는 철학의 융합을 시도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칸트를 비롯한 근대의 수많은 철학자와 20세기 초의 사회과학자들까지 서우의 철학적 용광로 안에 들어간다.


전병훈에게 있어서, 그의 철학은 투철한 자기부정과 부단한 갱신의 결과였다. 조선에서 성리학자로 인생전반기를 보냈지만 끝내 유교의 굴레를 벗어났고, 내단의 도를 성취했으나 세상을 등지고 우화등선만 구하는 도교의 폐단을 질책했다. 하지만 그 모두를 뿌리째 부정한 것이 아니라, 마침내 양자의 벽을 허물어 새롭게 調劑하려는 조탁의 과정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유·불·도 3교와 서양철학을 망라하는 모든 정신의 대륙을 자유로이 횡단하고 탐험했으며, 『도진수언』(1919, 亡失)과 『정신철학통편』(1920) 등을 편찬해 그의 철학을 체계화했다.


서우는 그의 철학을 ‘정신철학’으로 명명했으며, 베이징에 ‘정신철학사’를 건립해 학문을 연찬하고 제자들을 양성했다. 20세기 초엽 중화민국(북양정부)의 국무총리와 총통대리 등이 그의 문하에 있었다. 캉유웨이(康有爲), 옌푸(嚴復), 왕슈난(王樹枏)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그의 철학을 칭송했다. 급기야 그는 중국인 제자들로부터 절세의 성현으로 추앙받았다. 단재 신채호는 서우가 철학적으로 “한번 세계를 통일해서 만세토록 불변하는 대총통이었다”고까지 찬탄했다. 그런 인물이 왜 지금껏 한국인의 기억 저편에서 캄캄하게 잠들었는가? 책을 내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질문을 제일 많이 던진다.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 철학계에 전병훈이 한두 차례 보고됐다. 그러나 다만 그가 최초로 서양철학을 수용한 한국인의 한 사람이라는 데 방점이 있었다. 그리고 서우가 중국에서 내단학을 수련했다는 것에 약간의 호기심이 더해졌다. 한데 그뿐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되기 전에 전병훈은 한국에서 거의 망각됐다. 도교를 철학에서 배제하고, 담론을 창조하는 철학자보다 철학적 지식의 전문가를 추어주는 학문의 메커니즘이 은연중 작동했다. 나는 그런 풍경이 20세기 한국철학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저간의 사정과 내 생각은 『우주의 정오』 ‘후기’에서 따로 밝혔다. 하니 그 이야기로 아까운 지면을 계속 쓸 수는 없다. 이제는 전병훈이 왜 망각됐는가보다, 지금 왜 다시 전병훈인가를 말해야겠다.


단도직입해서 말해 나는 과거의 철학을 추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래할 시대의 철학을 위해 서우 전병훈을 호명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전병훈 자신이 그의 철학에 부여한 ‘우주의 정오를 위한 철학’의 성격이다. 서우는 2백년 안에 근대 물질문명의 극성기를 지나, 인간 본성의 잠재적 측면이 재발견돼 ‘문명이 극치에 이르는’ 때가 올 것을 예견했다. 한데 그의 예견은 어떤 비의적 예언의 실현이 아니라, 철학의 설득력을 통해 뒷받침되므로 중요한 것이다.


서우는 크게 정신, 심리, 도덕, 정치의 네 방면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그의 정신철학은 중세 성리학과 근대 이성주의를 모두 넘어서고, 마침내 신체성을 회복한 인간 정신의 근원으로 들어간다. 심리철학은 정신과 마음의 관계를 해명하고, 급기야 뇌신경이 심리의 장소적 기반이 되는 이치를 논한다. 도덕철학은 선험적이고 추상적인 도덕형이상학의 이념을 걷고, 개별자에게 잠재된 정신과 양심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곧 도덕임을 밝힌다. 정치철학은 동서양의 전제정치를 혹렬히 비판하고, 민의에 따르는 민주와 공화가 인류 역사상 모든 정치의 기원이자 본질임을 설파한다.

중세 성리학과 근대 이성주의를 넘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 심리, 도덕, 정치가 긴밀하게 연계되며 일맥상통하는 맥락을 밝히는 데 있다. 하지만 현대정치는 타락한 대의민주제의 정치공학적 복마전으로 전락했다. 그로부터 거의 배제된 도덕과 양심과 정신을 정치에서 재생해야한다면, 서우의 철학이 신선한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과 윤리학 역시 마찬가지다. 정신, 심리, 도덕의 고립된 전문성과 장벽을 넘어서는 학문 간의 통섭에서 ‘우주의 정오’가 한국적 담론의 제법 든든한 주춧돌이 될 것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특히 생명과학)의 탐구를 통관하는 새로운 철학적 형이상학(우주론)의 시각을 얻는 데도 ‘우주의 정오’는 중요하다.


한편 『정신철학통편』은 근세의 문헌 가운데 처음으로 『천부경』 원문과 해설을 실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우가 유아병적인 자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웠던 건 아니다. 그는 민족의 보존과 함께 사해동포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고, 공자의 대동사상과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아울러 계승한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세계통일공화정부 헌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같은 시기의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며, 시대를 앞선 원대한 철학이었다.



    
      
  



김성환 군산대·철학
필자는 베이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과 한국의 도교(도가) 및 신선사상, 그리고 동아시아 담론 등과 관련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 『黃老道探源』, 『회남자』, 『중국철학』(공저), 『개벽과 상생의 문화지대 새만금문화권』(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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