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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글쓴이  :   *** (2003.11.04 - 12:23)
  【기존 수행법 갈무리 새천년 昇一華】
  정말 수행법 보다 어려운 과제는 없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세상에 그토록 많은 경전과 책들이 기술되었겠습니까. 정말 사생결단을 해도 헤메다 끝날 수 밖에 없도록 되어있지 않는지요. 이제부터 한평생 신명 바친【기존 수행법 갈무리 새천년 昇一華】를 요약해서 올리오니, 각자 자신의 길 확고히 하는데 참구하시길 빕니다.
  
《 기존 갈무리 》
① 기도와 절
흔히 기도와 절을 낮은 수행법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만큼 높은 수행법이라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기막힌 방법이 있다 해도 실생활에서 적용하기 어렵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지요. 기도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까지 어려울 때 자기도 모르게 하는 것 아닙니까.

이제 새천년을 맞아 기도와 절을 예수 석가에 믿음 넘어, 닮음 넘어, 처럼 사는데 목표를 두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이르름에 필수인 대상 자체는 지나치게 신격화된 점이 문제일 뿐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제부터 그 분들의 인간적인 면을 찾아 祈禱를 氣導로, 꺾어 편안함 뜻하는 折을 일체 뜻하는 切로 승화시킨다면 새천년에도 아주 훌륭한 수행법이 될 것입니다.

② 참선과 명상
  참선과 명상의 목표가 삼매입니다만, 우주와 생명은 내가 알아차리는 만큼이라 하면서(唯識), 열반경에서조차 한 사람이 500대의 수레가 지나가는 것조차 몰랐다 자랑하니까, ○○는  옆 사람이 벼락 맞아 죽어나가는 것조차 몰랐다 하여 제자 삼았다고 스스로의 수준을 투사여 기록한 것보다 더한 코메디는 없지요. 물론 일상의 번잡에서 벗어나 조용히 있는 자체만도 상당한 가치가 왜 없겠습니까.
  
더구나 비종교인들의 명상이 아직도 소경과 중독을 뜻하는 잠들 명자 瞑想을 쓰면서 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근래에 명상을 일반화 하는데 인도의 라즈니시보다 크게 공헌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동적인 명상조차 meditation 어원이 medicine에서 유래했다고 수십번 강조한 것처럼 마음 힘들고 괴로울 때 먹는 약과 같은 차원에 머물고 있지 않는지요.

참선과 명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만유의 근본인 나를 새천년에서조차 얼나 신나 통해 긍정 발현하려 않고 부정적인 면에 초점이 맞춰져 계속 비우고 없애고 죽여야 한다고 하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본성은 원래 평화이고 무한인데 몸 마음의 탐욕이 마치 하늘 가린 구름처럼 본성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 없애면 된다"는데 합류하여 왔습니까. 어떻게 빛을 가져와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도 어둠을 물리쳐 빛을 가져온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한알의 씨앗이 녹말 부분의 분골 발효 아닌 썩어 죽어서 많은 열매 맺을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애벌레가 고치 벗고 나비되지 없애고 죽여서 된단 말입니까. 몸 마음은 개체의 존재 자체요 욕구는 곧 생명력인데 어떻게 관념에서 벗어나는 관념놀이로 현실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으리까.

만약 삶은 활동과 휴식이 건강한 사인 커브를 그려야 함에 동의하신다면, 지금까지의 삼매 개념은 그저 잠 잘자는 것으로 끝내고, 오직 우주와 생명을 어떻게 제대로 알아차려 생명을 만끽할 것인가로 모아져야 할 것 아닐지요. 얼마전 모 큰스님께서 불교의 최종 목표는 고통을 줄이고 기쁨을 늘리는 離苦得樂이라고 하더이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8만4천 법문 핵심 "없음 통한 없음으로 없음이 없는" 목표와 과정이 달라 거의 백발백중 空에 빠지는데 그 분만큼은 예외임으로 느껴지더이다. 명상의 목표 또한 라즈니시가 말한 것처럼 至福이라면, 지금부터 잠들 명자 瞑想을 복 명자 示冥想으로 바꿔, 지금까지 수천년간 "나없음"으로 해석해 온 無我를 "무로서의 나'로 숙성시켜야 하지 않을지요. 無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한 없음이 아니라 모든 有의 근원으로서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것 아닙니까. 보다 자세한 사항은 새천년 昇一華에서 이어지겠습니다.
  
③ 화두선
한국의 불교가 한자 한자 깨쳐가는 敎宗보다 禪宗이 선호되고, 서서히 밝아지는 默照禪 보다 한번에 왕창 터트릴 수 있다는 話頭禪이 선호된 것은 결코 요즈음의 대박주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물론 화두를 잡고 궁구하면 아편중독보다도 심한 생각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고, 어느날 그 바탕인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자나 깨나 일념만을 유지한다는 것이 먹고 사는 일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현실 적합성이 있는가를 떠나, 근본적으로 그렇게 오랜 세월 애써서 얻은 경지가 과연 구름 열고 하늘을 본 것인지 구름사이로 하늘을 본 것인지요.

물론 구름 사이로 본 것이라 할지라도 그 가치가 상당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안가 구름이 다시 끼기 마련인데 있으므로, 언제든 구름 열고 하늘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위빠사나와 결합하여 기존 "이뭐꼬"와 비교될 수 없는 결정적 화두를 분명하게 확보해야 하고, 그러자면 하늘-본성을 사전에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보다 자세한 사항은 새천년  昇一華에서 이어지겠습니다.

④ 위빠사나
우주와 생명은 내가 알아차리는 만큼이므로 알아차리기 만큼 수행의 핵심은 없습니다. 오직 한국의 불교가 화두선에 편중되고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역시 단순히 바라보는 인지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지요. 물론 걸으면서 ‘걸음’ 앉으면서 ‘앉음’ 행위 알아차리고, 들숨 때 ‘들어옴’ 날숨 때 ‘나감’ 호흡 알아차리고, 다리가 저리면 ‘저림’ 손으로 잡으면 ‘잡음’ 감각 알아차리고, 따분 느껴지면 ‘따분’ 좋음 느껴지면 ‘좋음’ 감정 알아차리고, 과거 기억 떠오르면 ‘회상’ 미래 상념 떠오르면 ‘상상’ 생각 알아차리면, 집착이나 휩쓸림 같은 부정적인 문제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부정을 방지함으로서 긍정을 피울 수 있을 것이며, 주의를 대상에만 맞춰 주체의 확장을 기할 수 있으리까.

진정한 알아차리기를 한문으로 쓰면 斡我此理氣입니다. 지금 나와 접촉되어 있는 대상을 살펴봄으로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 궁극 목표가 아니라, 대상의 이치와 기운 통해 주체의 진면을 보다 더 확실하게 넓높깊이는 것이지요. 물론 앞의 화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늘-본성의 나를 사전에 넉넉하게 확보하는 것이 선결 조건입니다. 그렇게 되면 긍정적인 대상은 물론 어떤 부정적인 대상도 내 진아의 세계를 더욱 곱게 빚어주는 은혜가 되는 것으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새천년 昇一華에서 이어지겠습니다.

⑤ 염불 주문 만트라 찬송찬불가
흔히 하근기 방편이라고 알려져 있는 염불 주문 만트라는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참선보다도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단순한 내면 정화의 파동요법을 넘어, 라디오 다이얼을 710에 맞추면 공중파가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생각보다 강력한 음파로 공중파도 함께 불러 담는 효과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존재 자체가 理와 氣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뜻도 모르고 무조건 남이 만든 것을 따라 부르고 외운다고 그런 효과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시중의 유행가가 스트레스 발산 효과 뿐, 사람을 알곡으로 만들기 보다 자꾸만 껍질로 만들고 있지 않는지요.

만약 찬송찬불가 내용의 수준을 기도와 절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믿고 따르는 차원에서 닮고 되는 차원으로 높인다면 이보다 훌륭한 방편은 없습니다. 먼저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개작하여 만들어 보십시요. 그런 다음 멋대로 온 존재 가득하게 온 누리 가득 울리면 됩니다. 노래 넘어 소리노래로, 소리노래 넘어 소리기공노래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새천년 昇一華에서 이어지겠습니다.

⑥ 요가 기공 선도(단전호흡)
요가 기공 단전호흡의 공통적 핵심은 調身 調息 調心입니다. 존재의 기초를 다지는 방편으로서, 아무리 어쩌고 저쩌고 해도 몸의 건강을 확보하지 않고는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직 문제가 있다면 마음 잠잠하게 하는 그 이상의 차원에 대한 확실한 길을 제시하기 어려운 점이지요. 요가가 통전적 의식 확장 아닌 동작에 머물고, 기공 또한 이루기가 理壘氣인데도 기만 가지고 모든 것을 이루려 하고 있으며, 선도는 아예 호흡의 중요성을 그토록 꿰었으면서도 허공에 출신시켜 영생불사하는 신선됨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는지요.

물론 요가 호흡 기공은 훌륭한 대체의학 요법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다 상위 차원에 대한 확실한 此理氣 없이 온전한 치유를 기대할 수 있으리까. 요가든 기공이든 선도든 핵심을 斡我此理氣에 두면 새천년의 훌륭한 대체의학 요법이 되면서 수행 방편이 될 것입니다. 요가 기공의 수많은 동작들을 한마디로 말하면 평소에 안하든 짓 아닙니까. 어찌 어떤 동작을 하느냐 보다 얼마나 알아차리기 하느냐가 중요한 사항이 아니리까. 단전호흡 또한 들숨과 날숨 통해 기운을 축적·활용 넘어, 그를 통해 나의 본성을 보다 명료하게 하고 확고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지요. 보다 자세한 사항은 새천년 昇一華에서 이어지겠습니다.

⑦ 채널링 모델링
채널링을 현대판 서양 무당으로 보는 것은 사람은 보는 만큼임을 다시금 알려주는 것입니다. 세상사 모든 문제를 절대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므로 이보다 더 통전적 관점을 키우는데 좋은 방편은 없지요. 오직 문제는 누구든지 자기만큼 밖에 못보는데도 그것을 절대화 하고 있고, 지금까지 아무도 자기의 수준만을 드러냈지 수준 자체를 높이는 방법을 드러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생각과 말의 차원에 머물 뿐 행으로 연결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한 점 아니겠습니까. 안그래도 좋은 말이야 노자의 도덕경을 비롯해서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 탈인데 오히려 그 점을 더욱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모델링은 심리학 분야인 NLP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세상 더럽다"고 하는 사람은 더럽게 결과지어질 수 밖에 없는 프로그램이 마음 속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항간에 삶은 신념대로 이루어진다는 구도하에 뜻대로 살게 하겠다는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은 것이지요. 오직 아무리 모델링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최선의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모델링이 모듈링 될 수 밖에 없고, 아무리 뜻대로 살 수 있다 해도 최선의 뜻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뜻대로가 마음대로 될 염려가 있을 뿐...

채널링에 말이 아닌 말씀, 전함 넘어 보는 차원 제시되고, 모델링 뜻대로에 최선의 모델 최선의 뜻- 意識의 意에는 개체의 뜻과 전체의 뜻이 함께 내포되어 있으므로 자연에 부합되는 자신의 뜻 제시되길 기원하면서, 이제부터 새천년 昇一華에 대해서 말씀 올리겠습니다.

《 새천년 昇一華 》
먼저 존재의 차원부터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혼이 무엇이고 영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신이 무엇이고 의식이 무엇인지까지, 얼굴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면서 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세종대왕의 얼을 기립시다"하면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의 혼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는지요. 존재의 가닥을 잡으려면 먼저 차원부터 정리함이 필수입니다.

                                     神

                                     蘖

                  理                 心                   氣

                                     精

                                     物  
物 精 心 蘖 神이 상태함수일 제, 理와 氣는 작용함수입니다. 物에서 神까지의 어떤 과정에도 理와 氣는 항상 필요한 것이지요. 왜 의식이 빠졌냐구요? 의식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알아차리는 배경이자 바탕입니다. 그리고 개체와 전체가 이어진 차원을 개체 쪽에서 봤을 때 혼, 전체 쪽에서 봤을 때 영이고요.

어떻습니까. 존재의 차원 정리에 동의하시는지요? 마음이 아무리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들어 어떤 사람은 원숭이에 비유하고 어떤 사람은 마귀에 비유하지만, 어쨋튼 존재의 중심으로서 마음 문제보다 중요한 사항은 없고, 마음의 문제만 해결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인류가 해온 것을 보면 너무 너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종교는 물론 최근의 명상과 의식개발 프로그램까지 얼나 신나 통한 긍정 발현 아닌 부정 제거에 초점이 맞춰져 "비워라 맡겨라 없애라 죽여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빛을 가져와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도 어둠을 물리쳐 빛을 가져올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한알의 씨앗이 녹말 부분의 분골 발효 아닌 썩어 죽어서 많은 열매 맺을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애벌레가 고치 벗고 나비되지 없애고 죽이고서 된단 말입니까. 몸 마음 부정하고 상위 차원만 남게 해야 할 것이라면 근원에 그대로 있지 왜 개체로 태어났습니까.

자유가 무엇입니까. 자유는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이 스스로에서(自) 비롯되었음을(由) 자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근원과 하나됨( )과 만물과 하나됨(一) 통해 십자가(十)를 확실하게 담고(田), 나아가 삶 속에서 현현시켜야(由) 온전한 자유가 되지요. (문자 진리설 아닌 문자 통해 절대 잊지 않기 위함임)

그리고 사랑을 한번 한자로 써보십시요. 한자의 기원이 동이족이든 한족이든 누가 더 그 뜻을 오롯이 삶 속에 담는가에 따라 주체가 결정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글을 한자로 써보면 그 의미에 깜짝 놀라는 최고의 대표가 사랑입니다. 사랑은 思良입니다. 생각도 중요하고 감정도 중요합니다만 감정이 생각 여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생각 思자를 쓴 것이고, 良자는 좋을 량일 뿐 아니라 무덤 랑임에, 사랑을 행위 차원 넘어 존재 차원으로, 그 진수를 표현하는데 너무도 기막힌 것이지요. 마음고치를 넘나드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니, 세상에 이보다 더 절묘함이 어디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행복이 무엇입니까. 행복은 글자 그대로 幸福입니다. 幸(土=土) 자가 뜻하는 것처럼 니땅 내땅 니자아 내자아 니마음 내마음이 같아져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삶이 그리도 지지고 볶음이 되겠습니까. 니자아 내자아가 같아지기 위해서는 오직 福 자가 뜻하는 것처럼 一에서 口 나아가 田 - 작은 것에서 큰 것, 하찮은 것에 하늘이 가득 차있고 귀찮은 것에 귀함이 가득 차있음을, 앞에 있는 어떤 사람도 모두 큰바위 얼굴로 보는 경지까지 나를 최대한 넓혀야 가능하니, 이 또한 얼마나 절묘합니까? 결국 자유 사랑 행복의 본질이 같은 것으로서, 그 핵심이 마음고치를 여하히 자유로이 넘나들어 나비되고 비단짤 것인가에 있는 것이지요.

물론 마음고치 넘나들어 나비되고 비단짜기는 너무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부정 일변도로만 치달아 왔겠습니까.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 곧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사실에서 대문을 활짝 열 수 있으니, 사랑에 빠지면 왜 못줘서 안달입니까. 그것은 그토록 끈질긴 소유의 고치에서 벗어났다는 것 아닙니까. 똥싸는 것까지 예뻐보이는 것은 분별고치에서 벗어났음이요, 너와 내가 따로 없는 것은 맨 밑바닥 애고고치까지 벗어났음이라. 문제는 오직 그러한 상태가 특정사람, 특정시간에 머무르는 점인데, 바로 그 점을 모든 사람 모든 시간 모든 장소로 확장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인 것이지요. (공중부양과 전생체험은 초등학생 놀이)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만 당신의 길 확고히 하는데 참구하시도록 @@@ 과정 말씀드립니다. @@@에서는 한달에 한번 자유 모임 뿐 초급 중급 없이 5박6일 한판에 끝내겠다고 뺨맞을 소리를 합니다. 물론 이제 더 이상 찾지 않고 사는 일만 남게 할 뿐 유전인자까지 바꾸지는 못합니다. 과정은 기존의 모든 선지식을 한 장의 글이자 그림으로 압축한 다음, 애벌레가 나비될 때 고치를 죽이고서가 아니라 그저 벗고 되는 것처럼 마음 굴레 벗고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본성 세계에 진입하는 얼나 단계와, 고치 밖 비상 통해 나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신성의 존재임을 아는 신나 단계와, 얼나 신나에 이르러 삶의 모든 과정을 은혜로 맞이하면서 삶 자체를 道로 생명 누리는- 가장 기초에서부터 나 근원 하나와 나 아님 없는 나까지 망라한 나나의 3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출발 전 의식-호흡-감각 통해 우주에 어떤 것도 창조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오직 내가 주의를 어디에 맞추고(첨단 의식개발 핵심), 얼마나 斡我此理氣 하여(석가 수행법 핵심), 어떻게 둘을 하나로 만들 것인가(예수 하늘길 핵심)가, 화두선과 위빠사나를 결합한 유일한 화두요, 위빠사나의 혁명임을 확실하게 새기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기본이지요.

여기에는 기공의 혁명 통해 기운을 받쳐주는 것 또한 필수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지 않고 일하면 체중이 줄어드는데 그것이 氣가 精으로 화한 것입니까. 精이 氣로 화한 것입니까. 진정한 滅生의 길은 연정화기-연기화신-연신환허가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공을 잘 보면 결코 허가 아니라 모든 유의 근원임을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 통해 간단 확실하게 파지하는 것이 練虛還神이요. 내가 의식을 어디에 기울이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기운을 사용할 수 있음을 순서 암기하는 부담없이 자유로운 춤으로 승화하는 것이 練神化氣요, 그 기운을 필요한 곳에다 구체화 현존화 시킴으로서 어떤 아픔도 낫게 하면서 힘을 강화하는 것이 練氣化精이지요. 여기에 소리기공노래까지 곁들여 심각 아닌 진진 내기로, 1 2 ...9 10 아닌 1-10 2-10...9-10 10-10 개념하에 배우면서 스승을 겸하게 하였으니, @@@이 얼마나 지금까지의 목표와 방편을 혁신시킨 것인지 아실만한 분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스스로의 본성을 배경삼아 담뿍퐁당 기법으로 삶의 어떤 것도 은혜로 맞이하면서 삶 자체를 道로 생명 누리는 자가 진정한 인간 아니겠습니까. @@@은 기존의 어떤 것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차원을 높여 모두가 하나되게 할 뿐입니다. 그동안의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진리는 하나"라고 외치면서 자기의 영역을 확장하기에만 급급, "하나로 통하게 하는 것이 진리"로 나아오지 못했습니까.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는 어떤 것도 나뉘지 않은 하나의 세계,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니것 내것 밉고 곱고 좋고 싫고 온갖것 나뉘인 둘의 세계, 그래서 인간이 그토록 추구하는 자유 사랑 행복의 본질이【하나】인 것으로, 그것을 이웃 일본만 해도 불교가 들어가기는 했지만 神敎로 둔갑되고, 유교는 양명학만 쪼끔, 기독교는 아예 발을 못붙였는데,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불교가 들어오면 불교(없음 길)의 천국이 되고, 유교가 들어오면 유교(중용 길)의 천국이 되고, 기독교가 들어오면 기독교(있음 길)의 천국이 됨으로서, 창녀 아닌 융합보다 넓높깊이는 비결이 없기에 종교 넘어 종학으로 새로운 신문명 준비해온 한국의 【한】 속에서 가장 많이 찾아낸 것이지요.(외국인은 각자 자기나라 근원어 속 삶과 연결) 이제 명실공히 새천년이 도래했음과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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