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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0월 2일(일) 13:30~14:50

 야마기시 공동체와 연찬회

    연사 : 윤성열 대표(한국)

한국에 처음 야마기시즘을 소개한 부친의 뒤를 이어 1966년부터 현재까지 야마기시즘 운동에 참여하여 1984년 야마기시즘 경향 실현지를 조성하였다. 연세대학교 생물학과졸업. 홍익고등학교 교사(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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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즘 운동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53년 3월 16일 일본 쿄오토에서, 야마기시회가 양계보급회(山岸式養鷄普及會)와 동시에 다음과 같은 취지로 발족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과 인위, 즉 천(天)? 지(地)? 인(人)의 조화를 도모하여 풍부한 물자와 건강과 친애의 정으로 가득 찬, 안정되고 쾌적한 사회를 인류에 가져오는 것을 취지로 한다.”
그 당시 일본은 전쟁에서 패한 직후인지라,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 식량난도 심각한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이 운동의 제창자라고 볼 수 있는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代藏: 1901~1961)는 그의 사상에 공명하는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게 된다.
1956년 1월 12일부터 일주일 간에 걸쳐 쿄오토의 어느 절에서 162명(야마기시 씨도 수강자로 참가)이 수강한 가운데 제1회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약칭 특강)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인간성 회복운동, 전인행복운동(全人幸福運動)으로서의 방향이 선명해지면서 수강했던 사람들의 열의에 의해 많은 수강자들이 모여들어, 특강이 연속적으로 개최되었다. 이 특강이 현재는 매월 2회씩 개최되어 2000회에 이르렀고, 한국, 스위스, 브라질 등에서도 개최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야마기시즘 운동은 1966년 1월 13일부터 수원농민회관에서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가 개최된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에는 야마기시회 양계법 중 농업 양계가 일반에 상당히 보급된 적이 있다. 그 후 여러 가지로 어려운 사회적인 조건에서도 끊임없이 성장하여 왔다. 그리하여 1984년부터는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구문천리에 야마기시즘생활경향실현지가 야마기시회 회원 중에 뜻있는 회원들에 의해 마련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이 실현지의 입구에는 행복회야마기시회 한국사무국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도 개최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야마기시즘 실현지의 과거와 현재, 비전 및 교육의 핵심인 연찬에 대해 발표한다.

아래는 '지금여기' 9-4호 기사중 장길섭 목사의 야마기시 연찬회 체험중 일부로 참고하시라고 올린다.
"또 하나의 내적 체험이 일어났던 경우를 말하면, 일을 하면서 수련을 한다는 야마기시 농장에 갔을 때입니다. 그곳은 닭에게 모이를 주러 가면서 인사를 하는 모습도 감동적이지만 함께 하는 모임이 빛을 줍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임을 갖는데 인도자가 “화가 날 일입니까?”라고 물을 때였어요. 그 순간 내게 어떤 빛이 쫘악 타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 말을 밤이 새도록 물었던가, 아마 몇 백번을 더 스스로에게 물었던 것 같아요. 계속해서 ‘화가 날 일입니까?’라고 묻는 거지요. 그때 제가 알았습니다....
옛날에는 스님이 제자에게 묻다가 말잖아요. 그러면 자기 스스로 물어야 되지요. 그게 바로 화두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은 그 압력이 아주 강한 화두였습니다. 보통의 화두란 혼자 하므로 본인이 압력을 넣지 않는 한 큰 압박이 되지 않는데 여기서는 15명을 모아놓고 못 나가게 한 후 계속 물으니까 압력이 아주 폭발적이었던 거지요. 이러한 방법을 일본의 야마기시가 전후(戰後)에 바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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