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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23-5호(통권137호 : 2018년 9/10...  201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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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통찰력 및 자기변형게임 진행 공지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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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6일) 53차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심화)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강사 월인(越因)
  장소 미내사 함양수련원
  본강좌 2018년 11월 16일 (금, 오후 2시) ~ 18일 (일, 오후 3시) / 2박 3일
참가자격: 깨어있기 기초과정 이수자
※ 모든 강좌 3일 전 접수마감
  수강료 60만원(<지금여기>구독자는 59만원, 숙식비 8만원 포함) ※ 홀로스 발기인 및 재수강자 50% 할인해서 34만원 ※ 현금수입 없는 종교인, 학생은 지역통화로 50%이상 대체, 편집-번역위원은 25% 할인, 단 숙식비 비적용
  입금처 농협 053-02-185431 이원규 (카드결제 가능)
  문의 02-747-2261

강좌신청하기 ㆍ조회 :  26385 회
ㆍ의견 :  76 개  [의견쓰기/보기]
ㆍ추천 :  1396 분  [추천하기]
  강좌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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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越因)
월인(越因)은 '인연을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 만물과 우리 내면은 모두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다는 인연법칙의 소산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어주고 있지요. 그 어느 것도 변함없는 제1원인인 것은 없습니다. 우스펜스키의 말대로 '미지(未知)가 미지를 정의하는' 현상이지요. 그것은 외부 물질세계와 내부 정신세게를 망라하여 모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의존하는 '인연'의 '뿌리없음'을 보면 이제 인연을 넘어서게 됩니다.
그의 모양은 이런 저런 파도록 가득하지만 모양을 넘어선 그곳엔 오직 아무런 모양도 없는 '물'만이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바로 이 인연의 세계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말하는 모든 이들을 대신해 월인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 인연의 세계를 넘어 있는 곳을 향하여...
(본문에서...) 절대의식은 어디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발로 딛고 서있는 지금 이곳에 이런 저런 일상의 생각이 활개치는 상대의식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늘 음양을 포함하는 태극과 같습니다. 음양이라는 표면의 상대세계가 멈추면 바로 그곳이 태극의 세계인 것입니다. 당신이 괴로워하는 그 번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멈추는 순간 바로 그곳이 절대세계인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채워진 드라마의 세계, '나'와 '대상'이 있고, 이것과 저것이 있는 상대 세계는, 바로 그 순간 절대세계 위에서 벌어지고 있으므로 항상 지금 이곳에 이 둘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와 물이 같이 있듯이...(중략)



준비물 : 깨어있기 책자, 통찰기록용 작은 수첩과 필기구, 세면도구 및 타올

[관련강좌]
- 깨어있기™ 워크숍 기초과정
- 깨어있기™ 워크숍 심화과정
- 깨어있기™-계절 수업
- 관성 다루기-감정, 텐세그리티
- 삶의 진실 100일 학교


[관련도서]
- (단행본)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
- (단행본) 『관성을 넘어가기-감정의 대해부』
- (단행본)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上』

[근본 경험]
- '그것'을 만나다
- 현상을 일으키는 내적인 분열을 보다
- 찾는 걸음을 멈출 때 자유는 드러난다

[관련기사]
- 감각(感覺)과 감지(感知)
- 나도 사라지고 세상도 사라지는 체험
- 생각과 느낌의 경계
- 기초과정 참가 후기


<머  리  말>
‘나’는 어떤 과정을 거쳐 ‘나’라고 느껴지게 되는 것일까요? 아주 어린 아이들이 ‘나’라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라는 느낌은 분명 성장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라고 느껴지고 우리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요? ‘나’라는 것이 어떻게 사물을 ‘보게 되고’ ‘듣게 되며’ ‘알게 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참으로 흥미로운 과정과 놀라운 환상이 겹쳐져 있습니다. 먼저 이 전체 청사진의 뿌리에는 ‘나와 너’라는 이원론이 자리하고 있으며, 생명에너지가 그 중 하나를 더 많이 편들고 있고, 에너지 불균형이 일어난 그 둘 사이의 평형을 이루기 위해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안다’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즉, 당신에게 어떤 사물이 보인다는 것은, 보고 있는 ‘나’와 보이는 ‘사물’로 나뉘어져 있고 그중 ‘나' 에너지를 더 많이 두어 그것과 동일시함으로써 중심으로 삼고 있으며, 거기에서 ‘사물’이라는 대상이 보이고 느껴지고 알려진다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보고 듣고 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환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우리가 보고 듣고 안다기보다는, 보여 지고 들려지고 알려지는 것들에 이름이 붙어 의식이라는 전체 네트워크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기에서 ‘나’란 그저 하나의 요소일 뿐이며, 전체 흐름의 본질은 순수한 생명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채게 됩니다. 분리된 내가 있다는 느낌, 사물이 있다는 느낌, 무언가 들리는 현상, 다른 것과 차이 나는 어떤 맛이 있다는 느낌은 모두 생명력의 장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패턴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책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를 통해 그러한 과정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맛보게 될 것이며, 그러한 경험을 통해 ‘나’라는 패턴에서 벗어나 그 패턴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자리’에 자신이 늘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009. 11. 1 월인



<워크샵 내용>

● 준비물 : 기초과정을 통해 감지 구분하기

● 깨어있기
- 깨어있기란 무엇인가?
- 깨어있는 의식 느끼기
- 사물, 생각, 감정, 오감과 함께 깨어있기
- ‘내가 있음’ 느끼기

● 동일시 넘어가기
- 기억으로서의 나를 넘어가기
- 동일시 끊기 1
* 확장연습 : 주의의 힘
- 동일시 끊기 2

------ 아래는 기초과정에서 연습한 내용으로 감지와  감각을 구분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복습합니다 -------

● 의식
- 의식의 해부도
- 우리는 의식의 근본을 왜 보려하는가?
- 감각하기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 의식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 ‘나’라는 느낌은 어디서 오는가?
- 의식 탄생의 과정

● 주의
- 주의의 종류
- 물은 달이 아니라 달그림자를 보고 있다
* 확장연습 : 침묵으로 가득 채우기

● 감지
- 감지란 무엇인가?
- 중성적으로 느끼기
- 분별감 느끼기
* 확장연습 : 에너지 바다
- 감지의 과거성 : 기억
* 확장연습 : 존재의 중심 찾기

● 감각
- 감각 발견하기
* 확장연습 : 확장하기
- 다양하게 감각하기
- 낯설게 보기
* 확장연습 : 사물과 접촉하기

● 용어정의
- 감각 : 獵� 그대로를 느끼다
- 감지 : 익숙하다, 안다는 느낌 속에 갇히다
- 주의 : 생명의 투명한 힘
- 생각과 의식 :감지들의 네트ㅇㅝㅋ
- 동일시 :삶을 '알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
- 감정 :감지들간의 밀고 당김을 보여주다
- 감각에 열려있기
- 깨어있기 : ‘있음’을 깨닫기
- 각성(覺性) : 의식의 본질을 깨닫기
강좌후기 (총76개)
HereNow ( 2018-09-18  13:21 )       
52차 깨어있기 심화 후기


이다(마스터과정)
2박 3일 간의 깨어있기 심화가 마무리되었다. 인상 깊었던 것 위주로 후기 남깁니다.
첫째 날은 실체라는 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가 믿고 있는 실체에 대해 아님을 하나씩 예를 들어주셨다. 이것을 시작으로 대상과 주체, 관계성, 현상계, 마음의 구조에 대해 다가갈 수 있었다.
둘째 날은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에서 대화하기였다. 월인 선생님과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에서 대화를 하는데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려 애를 쓰다 보니 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선생님께 제 상태를 말씀드리니 주의의 특색만 속성만 남겨놓고 해보라는데, 주의에 기울이던 힘을 2 or 1로 줄이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 특성만 남겨놓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엔 일시적인 나를 느끼고, 몸에서 느낌을 찾아 경계 짓고, 그것의 부분임을 알기를 하였다. 그동안 느낌을 대상으로 느끼긴 했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느낌은 안정된 부분적인 나라는 것이 나타나는 것임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일시 끊기 수업도 인상 깊었다. 나라는 것이 가변적일 수 있고 느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추가로, 함양에 내려올 때는 에고의 아우성을 들으며 내려온다. 투명하게 그대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자그마한 반항, 두려움, 긴장감 등이 있긴 하다. 하지만 반대로 이끌림도 있다. 그 이끌림과 끌어당김에 나를 맡겨본다. 사실 맡겨지지는 않는다, 그 감정들은. 그 느낌들을 보면서 앵두관으로 들어갈 뿐이다.
짧지만 긴 2박3일의 수업을 마치게 되면 안도감과 긴장감 등등 또 다른 가변적인 나가 생겨나서 올라온다. 오늘은 그 느낌에 동일시되기보다는 일시적인 나, 느낌을 느끼고 놓아본다.


물방울(백일학교)
이번 심화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느낌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나만의 경험이 쌓인 내 상의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강렬하게 깨달았다. 외부세계와의 부닥침으로 힘들었던 과거들이 내 안의 기준과 강한 신념 때문에 힘든 삶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사물 감각하기’에서 형태와 질감을 빼놓고 보니 어떤 것은 선명하게 보이다가 평면으로 변하더니 허물어져서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며 놀랐기도 하고 신기한 체험이었다.
‘주의가 머무는 곳’에서는 계곡 물소리를 빼고 들으니 그냥 소리가 들려옴에 이상하다 싶으면서 ‘아! 아는 것(상)을 떼고 들으니 이것 또한 내가 경험하며 만든 상의 세계였구나.’라고 느껴졌고, 그렇다면 모두가 상인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의문이 올라왔다.
주의는 의도를 가진 에너지이며 의도를 가지고 주의를 주는 곳만 의식되고 느껴졌다. ‘주의에 주의 느끼기’에서는 의도를 가진 주의를 알아채는 순간 사라졌으며 그것으로 보아 어떤 주의도 느낌도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다고 느꼈다.
‘사물과 함께 깨어있기’는 늘 투명한 주의가 가고 있었으나 의도를 가지고 보지 않는 한 보지 못한다는 것과, 투명한 주의가 가면 감정이 없어지고 내가 만든 상이 없어진다고 느꼈다.
‘있음’의 상태에서 대화나누기를 통해 감정도 느낌도 없는 끄달리지 않는 ‘머물지 않는 마음’이 떠올랐다. 대화는 하고 있으나 바람, 물소리처럼 자연스럽게 소리가 저절로 나왔으며 환희심이 나고 에너지가 솟아났다.
있음과 투명함에 호기심이 생겨, ‘있음’ 안으로 에너지가 모이는 내가 있음을 느꼈고 투명함은 햇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서 그냥 하나가 되어 머물기가 되었다(내가 없는 투명함).
‘기억으로서의 나를 넘어가기’에서는 나란 느낌이 몸에 여기저기에서 느껴져서 ‘아! 고정된 나는 없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구나.’라고 느꼈다.
’동일시 끊기‘에서는 거울 속의 나가 거울 밖의 나를 보는 것을 하며 섬뜩하고 관찰당하는 느낌을 느끼다 하나가 된 듯했다.
사물, 동식물과의 주체감 옮기기를 통해서는 주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주체감이 달라진다는 것, 특정한 나가 없고 주체감이 있는 게 나라는 것, 내가 가변적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동일시 끊기’를 통해서 나를 찾고 나에게 주의제로를 할 때, 나를 찾을 때는 응축돼서 에너지가 확 응축되었다가 주의제로를 하며 힘이 풀리고 자유롭고 평화로워짐을 느꼈다. 이 과정을 통해 어떤 감정이나 느낌에서도 주의제로나 내려놓기를 통해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 싶어서 편안해졌습니다.
끊임없이 통찰이 올라오도록 이끌어주신 월인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함께 공부한 도반들의 소중한 인연에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류(백일학교)
의식의 구조 작동을 이해하고 체험하며 통찰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와 닿았다. 일상에서 계속되어진다면 ‘나’에 대한 깊은 이해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모두 넘어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신의 유희’라는 말이 생각나는 과정이었다. 신기하면서도 진지하고 또 무척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 재주 많지만 고통 받는 손오공에서 부처님의 손바닥이 되어본 느낌?! 통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자’가 사라질 때까지 지금 여기에서 이어가기로 마음먹는다. 불퇴전의 지위까지, 그 너머까지 갈 수 있는 도구를 얻은 것 같아 무척 기쁘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체험과 통찰로 이끌어주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메타몽(백일학교)
100일학교 40일 정도를 지내던 중 깨어있기 심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분들에 비해 느낌이나 주의 같은 것들의 내재화와 깊이가 낮고 얕은 것 같아서, 깨어있기 심화를 하기 전에 감지와 주의 연습을 많이 하려고 하였습니다. 외적인 감지가 어느 정도 의식되니 내적인 감지 연습을 들어갔는데 하다 보니 주의 연습의 필요성이 와 닿아서 주의 연습을 하다가 의식화가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로 심화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식화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깨어있기 심화를 듣는지라 이해를 다 못할 것 같은 불안과 걱정이 조금 있었습니다.
깨어있기 심화를 하면서 주의 연습이 정말 중요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심화과정이 진행될수록 주의의 중요성이 더욱 더 체감되니, 연습을 아예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느낌과 그 동안 연습했던 것들이 그래도 빛을 발한다고 느꼈습니다.
감정을 불러내는 것과 있음을 연습하면서 화, 있음을 불러내는 것이 잘 안되었습니다.
답답했지만 갈 길 잃은 에너지의 방향성이 다시 방향을 찾은 것 같아서 당분간 또 연습거리가 생겼다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주의를 통한 깨달음이 많아서 깨어있기 심화를 듣게 될 사람이 있다면 주의 연습을 많이 해서 주의력을 자유롭게 의식화할 수 있게 되면 좋을 것이라는 추천을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미 감지 연습을 많이 한 후 주의를 연습하다보니 초두효과처럼 처음과 마지막에 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그런 것일 것 같습니다.
깨어있기 심화가 끝나니 앞으로 해야 할 연습들이 많고 그 연습들이 모두 철저히 내재화되어 자유롭게 의식될 때서야 최종적인 지향점인 나로부터의 자유가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생을 아낌없이 베풀어주신 선생님의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 너무 커서 작아질 뿐입니다. 후기를 보실 모든 분들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운(농부, 지역활동가)
2박 3일간의 과정이 다 소화되지 않는 느낌이다. 다양한 요리를 살짝 맛만 본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라고 감지하는 것이 허상이고, 느낌이라는 것을 다양한 형태로 연습한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 해보면서 ‘나’라고 하는 것이 느낌이구나 하는 지점이 더 다가왔다. 전에는 ‘나’라고 할 것이 없는데 일상에서 ‘나’라고 느끼는 지점에 대해서 ‘나’라는 느낌 자체를 없애려고 한 것 같다. 이번에 하면서는 ‘나’라는 것을 느끼되 그게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이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일상에서 그럴 때 느껴지는 것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실재에 맞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연습을 통해 ‘나’라는 것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주의’ 연습이나 느낌의 특성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나’가 발생하는 순서를 살펴본 것이 돌아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어떤 느낌이나 감정이 올라올 때 ‘아, 무의식 중에 나를 발생시키고 있구나.’ 알아차리고, 투명한 주의나 ‘있음’을 느끼는 것을 통해 ‘나’와의 동일시에서 떨어질 수 있겠구나.
연습 중에 사물에서 내 눈을 본다거나, 주의를 외부 대상에서 나에게로 보내는 것을 통해 내가 보고 있는 세계가 내가 만들어 낸 세계 속에 살고 있구나라는 것이 크게 느껴졌다. 이론으로 알고 있던 것이 체감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앞의 월인 선생님도, 이 공간도, 주변 사람들도 지금의 내가 만들고 있는 모습이구나. 나의 상 속에서 살고 있구나.
2박 3일에 하기에는 내용이 많다는 느낌도 들고, 스스로 찬찬히 느껴보고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꾸역꾸역 억지로 떠 먹여준 느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체득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로의 일상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알아갈지 궁금하고, 그것을 소재삼아 계속 공부해가고 싶다.
HereNow ( 2018-07-25  11:56 )       
2018년 7월 20일~ 22일 51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다르마(승려)

2시 10분 도착 예정이라는 내비게이션의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먼 길이라서 나름대로는 서둘러 출발했는데도 가다보니 함양수련원 ‘깨어있기 심화과정’ 강좌 시작시간에 10여 분 정도 지각하게 되었다. 월인 선생님께 기다리지 마시고 강좌 진행하시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드렸다.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도 지난 달 ‘깨어있기 기초과정’ 때를 회상하니 강좌 시작하고 처음 10여 분 가량은 참석자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10분 정도 지각이라면 본 강의에는 지장이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난달 방문 시에는 초행이라서 수련원 근처에서 조금 헤매었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라서 수련원 입구를 보자마자 곧바로 알아보고는 주저하지 않고 핸들을 돌려 좌회전해 들어가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강의장으로 달려갔다. 출입문에 낡은 슬리퍼 두 개가 보였다. 방문자 신발이 아니고 상주하시는 스텝 분의 신발 같은데 이번 강좌에는 나만 강좌신청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문을 여니 강의실이 텅 비어있었다. 이번 강좌는 다른 강의실에서 진행하시나 하여 선생님께 급하게 전화를 했는데 통화중이라는 신호가 들려왔다. 잠시 머뭇거리는데 불현 듯 오늘이 19일인데 강좌는 20일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급하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여 미내사 클럽을 들어가 확인해 보니 10분 늦은 것이 아니고 하루 먼저 도착한 것이 아닌가...
수련원 마당에 승용차는 세 대 있는데 건물마다 인기척이 없어 보여, 선생님께 다시 문자를 보내어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시원한 곳을 찾아 나섰다. 선생님과 스텝 분들이 자취를 하는 곳이라 하룻밤 먼저 신세지기가 좀 부담이 돼서 근처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곰곰이 되돌아보니 아침부터 내내 착각 속에서 보냈다는 생각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3시 30분 쯤 월인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저녁 때 찾아뵙기로 하고 선생님의 저서인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를 여기저기 손가는 대로 다시 읽어보았다. 벌써 두 번을 읽어보았는데도 처음 보는 내용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띄어 깜짝 놀랐다.
7시 30분에 선생님을 찾아뵙고 평소에 의문이 들었던 것들에 대해서 이것저것 여쭤보았다. 나는 생각이 무척 많은 편이며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대충 넘길 수가 없는 성격이라서 질문을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질 못한다. 그런데 선생님의 답변은 또 다른 의문을 일으키지 않게 명쾌하시다. 월인 선생님의 성향이 지적이고 분석적이시기 때문에 지성이 발달된 구도자들은 인연이 되면 구도의 여정을 수월하게 단축시킬 수 있을 듯하다. 하루 먼저 도착한 탓에 선생님과 대담하는 이런 행운이 생겼나 싶어 착각으로 인했던 허탈감이 사라졌다. 밤늦게까지 나의 질문공세에 진지하게 답변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내일을 기약하며 수련원을 나섰다.
다음날부터 2박3일 진행된 ‘깨어있기 심화과정’은 구도 여정에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이번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지는 않았지만 지난달 ‘깨어있기 기초과정’에서 이해되지 않았던 가르침들이 와 닿았다. 사실 지난달에는 ‘감지’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혼란스러워서 선생님 강의와 연습 도중에 좌절감이 심했었다. 이번 강좌를 통해 전체적인 맥락과 얼개가 납득이 되어서 희망의 빛을 보게 된 듯해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무척 가벼웠다. 물론 이번 강좌에서도 ‘생각을 떠올리고 그 생각이 일어나는 두되의 특정 부분을 느끼고, 그 부분을 경계 짓고 떨쳐내는 연습 과정’에서 위기가 왔었다. 생각이 일어나는 듯한 두뇌 부위를 나는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루한 공방 끝에 결국 월인 선생님께서 항복하시고 다른 연습으로 진행되었는데, 선생님의 요구가 나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내가 CT나 MRI처럼 할 수는 없지 않겠나 싶은 저항감이 올라와서 중도에 하차 할 뻔하였다. 여러 가지 연습 중에서도 마음의 주의를 ‘대상과 나’ 사이에 ‘중립상태’로 놓는 연습이 특히 유익했고, 마음의 구조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도 마음의 구조에 대한 그동안의 나의 혼란을 잠재워 주었다. 물론 아직은 마음의 구조에 대한 통찰이 일어난 것은 아니나 지적인 호기심이 무척 강한 나로서는 이론적인 탐색의 욕구가 시들어졌고, 실질적인 탐구로 구도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몇 명 안되는 인원인데도 불구하고 이번 강좌를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개설해 주시고, 강좌 도중 많은 자비심으로 지도해주신 월인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동참해주신 도반 분과 뒤에서 후원해주신 스텝 분, 그리고 맛있는 요리를 해주신 식당 주인장님께도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다른 강좌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깨어있기 과정’에 많은 분들도 인연되기를 추천해 드린다. 특히 지적인 성향의 구도자들에게 좋은 인연되시길 _()_
HereNow ( 2018-01-25  09:49 )       
나의 전부를 버리다 _ 해인(고등학교 한문 교사)
내면의 공간 전체를 의식하다가 얼마 후 갑자기 내 몸이 빅뱅처럼 폭발하면서 산산이 흩어져 빛이 됨을 체험했다. 내 몸에 있는 원자들이 순식간에 우주 무한공간으로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지면서 엄청난 빛만 있었다. 얼마 후 월인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근원으로 더 들어가 보라고 말씀하시기에 눈을 감고 다시 주의집중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빛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떴다.
마음공부(도 공부)한 지 30년 동안 빛 체험은 난생처음 겪은 일이다. 체험은 체험일 뿐 이것은 도道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통찰이라는 것은 마음의 원리와 구조를 아는 것이다. 이번 체험이 하나의 좋은 경험이 되었다. 통찰을 일으키는 데 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거울을 보면서 나의 얼굴과 몸의 경계가 사라짐을 느끼고 밖으로 나가서 산책하다가 껍질이 벗겨진 나무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상처 난 곳에 약을 발라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나무가 바로 나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산도 새들도 나라는 생각, ‘나는 도 닦는 자아가 너무 강했구나. 내가 너무 교만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 내가 자연 그 자체이구나. 내가 곧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나다”라는 통찰이 일어났다.
평소에 주의를 나에게 90%, 남(대상)에게 10% 보냈는데 반대로 주의를 나에게 10%, 남(대상)에게 90% 보내고 여러 사물(파, 아카시아 땔나무, 대나무, 소나무, 잡초 기타)들을 바라보니 너무나도 마음이 편안했다. 몸도 이완됨을 느꼈다. 얼마 후 내가 본 여러 사물들 모두가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가까운 가족을 비롯하여 주위 동료들도 나를 그렇게 불쌍하게 바라보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월인 선생님께서 “교만한 자도 내가 아니고, 불쌍한 자도 내가 아니다. 그럼 그 원인은 무엇인가?” 물어보셨다.
나는 다짐했다. ‘도를 닦는 자아’를 버려야겠다. 한평생 공부한 도(도 닦는 자아)를 지금 이 순간부터 버린다. 3일내내 목 놓아 울고 싶다. 이것은 나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모른다.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되새겼다.
3일 동안 월인 선생님의 성심을 다한 개인지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식사와 잠자리를 신경써주신 온비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존재한다는 느낌 _ 옴살(전직 과학교사)
깨어있기 심화 과정에 참여하기 전, 나름의 목적은 기초과정에서 가져왔던 한 동료와의 관계 문제이다. 그러나 이번 심화과정에서 감지 훈련을 하는 도중에는 그 문제를 잊고 있었다. 그냥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갔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다.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쉬었다 가자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오전, 주의를 나와 대상에 50:50으로 나눠보는 연습을 했다. 이 연습을 통해 비로소 ‘주의’와 ‘마음’의 문제가 어렴풋이 연결되어 새롭게 느껴졌다. 이 연습에서 느꼈던 느낌의 변화, 느낌의 차이에 주의를 더 기울여 재차 연습하였다. 반복할수록 분별이 뚜렷해짐을 느꼈다. 이후 연습은 재밌었다. 하지만 ‘재미있다’를 느끼는 순간 또 느낌이 흐릿해졌다. 생활 속에서 반복하는 연습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과정에서 ‘나’라고 생각했던 ‘나’와, 그것이 나가 아니었다는 관점, 그리고 ‘나’가 존재한다는 강력한 느낌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이후 문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으로 느낌을 위한 지속적인 탐구가 이뤄져야겠다는 인식이다. 문제로 여겨지던 ‘관계’는 마음의 상이 또렷해지면서 툭 떨어지며 그저 바람처럼 사라졌다.


전체의식으로 살기 _ 진허(창원대 교수)
검은 글자가 보이는 것은 배경이 되는 스크린이 흰색이기 때문이다. 자아가 있다는 것은 그 배경에 무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아는 노력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있음과 없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아는 순간 알게 되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 과정은 앞으로 있을 실제 생활에서 전체의식으로 살기 위한 좋은 계기가 되었다.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금 이 순간의 의식으로 살고 싶다. 심화과정을 통해 배운 감지 연습을 앞으로 삶 속에서 적용해 보고 싶다.
HereNow ( 2017-09-21  12:45 )       
느티(회사원)
대상은 보는 ‘나’, ‘나’가 느끼는 대상은 대상 자체일 수 없고 ‘나’에 의해 감지된 경험일 뿐임을 깊이 느꼈습니다. 감지로 구성된 ‘나’ 안의 세계에는 ‘나’가 있고 대상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의 경험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들과 하나가 될 순 있어도 그들의 실재를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허무성을 인정하면서도 허구이기에 허구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허구가 허구라면 지울 수도 있고 생겨날 수도 있기에 새롭고 지혜로운 ‘나’를 만들어 가기로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나’는 본질이 신성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때 좀 더 기쁘게 무릎을 꿇고 사라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요.

한생각(중고차판매)
산책을 하며 전체주의를 해본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람의 느낌은 바람대로, 새소리 물소리는 소리대로 흙냄새, 풀냄새는 냄새대로, 입 안의 느낌, 몸의 느낌은 느낌대로, 생각의 느낌은 느낌대로 그대로 주어진 대로 일어나고 있다. 전체주의 안에 내가 있음에도 전체의식과 교감할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희미해져가고, 주의가 한곳에 몰려 동일시될 때는 그마저도 아예 사라져버린다. 강력한 느낌의 나조차도 사로잡힘 앞에서는 따로이 있지 못한다.
찾으려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일까?
애쓰는 것도 안쓰럽다. 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의식하며 열린주의를 유지하기로, 주의가 항상 열려있도록 해본다. 무엇이 와도, 있는 그대로 흘려보내보기로 한다.
일상에서 느낌을 분별하지 않고 붙잡지 않기로 해본다. 지도하신 월인 선생님과 성지 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같이 하신 느티 님과 호요 님께도 큰 깨달음 있으시길 기원드린다.

호요(문화재 보수 기술자)
무심히 내가 본다고 느꼈던 모든 것(사물, 생각, 감정)이, 심지어 나라고 여겼던 것까지도 실은 나의 느낌이라는 경험이 놀랍다. 나는 느낌을 살고 있고 그 느낌은 텅 비어 있는 것이라는 자각이 결국 실체라고 여긴 현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또한, 그 느낌들이 드러날 때 나는 나의 주의를 주거나 주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거기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고 그 무게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삶에서 동일시하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객관적 대상으로 감지되고 더 이상 삶 속에서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의 믿음과 기준도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인연따라 흘러가게 한다면 모든 것이 보다 원활해질 수 있고 다가오는 모든 인연들에 대해서도 그것이 일이든 감정이든 사람이든 ‘예스’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매 순간 바탕의 비어있음을 더 깊이 살펴보고, 일어나는 느낌들의 관계를 확인하고 느끼고 끌려가지 않는 것을 실천해보겠다.
진심으로 지도해주신 월인 선생님, 성지님께 감사드리고 말없이 그림자처럼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신 도건 님, 온비 님, 통무 님 고맙습니다!!!
HereNow ( 2017-03-20  13:45 )       
한생각(중고차 판매)
기초과정에 이어 한달 만에 다시 심화과정을 한다. 다시 시작된 감지 과정. 이제야 이해되기 시작한다. 조금씩 자리 잡혀가는 느낌이다. 이어지는 주의와,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에 이은, 전체주의!
전체주의에서 새로운 경험이 시작된다. 전체에 주의를 주며 나라는 마음이 사라질 때 이 모든 것을 포섭하는 더 큰 의식이 느껴진다. 이 의식은 어떤 것에 영향 받지도, 영향주지도 않는다. 항상 모든 허공처럼 여여히 함께한다. 이 속에 만물이 함께 있음에 대한 어떤 의심도 없다. 그리고 다시 있음으로 머물며, 있음으로 있는 고요함과 평안함에 흠뻑 젖어본다.
이제 돌아가 다시 감지와 주의 현현에 쓸 수 있는 큰 도구를 얻어간다. 미내사 모든 관계자와 백일학교 도반들에게 감사드린다.


무지(백일학교 학생)
가장 인상깊었던 연습은 중심이 없는 상태로 있는 연습이었다. 다가오는 모든 느낌을 수동적으로 느끼게 되었고, 지금 이 순간의 느낌들이 끊임없이 변화함을 의식적으로 느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느낌이 먼저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고, 글을 쓰거나 말을 하기 전에도 느낌이 먼저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계속 순간을 최대한 느끼려 하니 내가 무의식적 습관으로 자동반응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지금 이 순간의 느낌들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의식적으로 느끼려 하는 이 의도가 일어났고, 뭔가 내가 느낀다. 관찰자도 끊임없이 변한다는 게 와 닿았다. 투명한 관찰자도 대상되는 느낌과 함께 변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이런 지점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려 한다.
특정 느낌에 머무를 수 없음을, 머무르는 느낌이 느껴져도 이미 끊임없이 지나가고,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 경험 나눔 시간에 머무르지 않는 마음이 핵심이라는 선생님의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위수디(승려)
감지훈련을 하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에 주의제로 하는 연습을 하다가, 사과밭에 가서 사과나무의 시각적 이미지를 보며, 이것이 마음이 잡아낸 상인 줄 알고 그것에 주의제로를 했다. ‘현상은 있다’라는 그 마음에 주의제로를 하니, 지금까지 마음이 잡아낸 마음에 취착하여 이름과 명분을 만들어 스토리를 지어내는 조작적 행위를 해왔다는 것이 알아차려졌다. 그러자 대상에 욕망을 불러 일으켜 그 대상에 구속되는 패턴이 쉬어졌다.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 연습에서, 공포 영화를 보며 몸에 긴장, 옭죄는 느낌의 긴장, 열감이 느껴졌다. 분노와 함께 깨어있기에서도 몸의 느낌에 집중해봤다. 화가 나졌다. 발생된 화를 원인으로 신체적 느낌이 좀 더 뚜렷해지면서, 열감, 폭발적인 내부의 느낌으로 인해 그동안 느슨해진 몸, 마음, 감정이 뒤집혀진 느낌이었다. 온몸에 침을 맞고 회복된 느낌. 그동안 억지로 생생해지려, 깨어나려는 의도적 노력을 넘어 자연적으로 몸이 회복된 느낌. 몸이 건강했을 때는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이런 감정이, 아프거나 침체해 있을 때는 오히려 긍정적 효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모든 감정이 귀한 선물이라는 통찰이 왔다.
그리고 다채로운 감정이 일어나는 현상과 함께, 그것의 배경이 함께 인식되어짐이 더욱 선명해졌다.


통무(백일학교 학생)
이 세상이라고 언어적으로 표현한 공간은 모두, 있음으로 느끼면 있음이고 없음으로 느끼면 없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은 가치가 없어지고, 글을 쓰는 것도 말을 토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매우 거칠며, 정교하지 못하다.
우리는 감각으로 생겨난 차이를 구별하고, 기억으로 저장하고, 생각으로 만든다. 거기에다 이름을 붙이고 표현을 하게 되며 말로 소통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현상에 불과하고 실제는 아니지만, 믿음이라는 작용으로 인해, 실제처럼 여기고 실제라고 부른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은 느낌이고 만져지는 것도 느낌이다. '만진다'란 없다. 왜냐하면 대상이 이미 있지도 없지도 않기 때문이다.
느낌으로 서서히 다가오면 허망함과 슬픔, 황홀함 등등 다양한 것들이 요동치고 받아주고 느끼고 하나가 되자고 애원하듯 한다. 하지만 보여지고 느껴진다. 모든 게 느낌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 순간 이것 이곳, 말로 표현되면 표현되는 것이다.
함께한 분들의 존재만으로도 내 마음에서 변해가는 과정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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