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내사클럽-HereNow.co.kr

미내사소식

지금여기 27-4호(2022년 7/8월, 통권160...  2022.06.30
지금여기 27-3호(2022년 5/6월, 통권159...  2022.04.29
《깨어있기》영문판이 발간되었습니다  2022.03.27

  강좌
ㆍ강좌일정표
ㆍ강좌
   의식개발/명상
   자기계발
   정신과학
   심신수련
   건강/치유
   미래예측/직관력
   첨단프로그램
   기타
ㆍ통찰력게임/자기변형게임 딜러
ㆍ강좌제안/요청
ㆍ찾아오시는 길

  - 강좌문의 02-747-2261
  - 수강료 입금계좌
    농협 053-02-185431
            (예금주 이원규)



전인(全人)을 위한 강좌 강좌비 환불조건


 진행중인 강좌 
크게보기
  (9월 16일) 76차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심화)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강사 월인(越因)
  장소 미내사 함양연수원
  본강좌 2022. 9. 16일(금) 오후 2시 ~18일(일) 오후 4:30 (2박 3일)
참가자격: 깨어있기 기초과정 이수자
※ 모든 강좌 3일 전 접수마감
  수강료 60만원(숙식비 8만원 포함) ※ 홀로스 발기인 및 재수강자 50% 할인해서 34만원 ※ 현금수입 없는 종교인, 학생은 지역통화로 50%이상 대체, 편집-번역위원은 25% 할인, 단 숙식비 비적용
  입금처 농협 053-02-185431 이원규 (카드결제 가능)
  문의 02-747-2261

강좌신청하기 ㆍ조회 :  41935 회
ㆍ의견 :  90 개  [의견쓰기/보기]
ㆍ추천 :  1734 분  [추천하기]
  강좌소개
크게보기
월인(越因)
월인(越因)은 '인연을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 만물과 우리 내면은 모두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다는 인연법칙의 소산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어주고 있지요. 그 어느 것도 변함없는 제1원인인 것은 없습니다. 우스펜스키의 말대로 '미지(未知)가 미지를 정의하는' 현상이지요. 그것은 외부 물질세계와 내부 정신세게를 망라하여 모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의존하는 '인연'의 '뿌리없음'을 보면 이제 인연을 넘어서게 됩니다.
그의 모양은 이런 저런 파도록 가득하지만 모양을 넘어선 그곳엔 오직 아무런 모양도 없는 '물'만이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바로 이 인연의 세계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말하는 모든 이들을 대신해 월인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 인연의 세계를 넘어 있는 곳을 향하여...
(본문에서...) 절대의식은 어디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발로 딛고 서있는 지금 이곳에 이런 저런 일상의 생각이 활개치는 상대의식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늘 음양을 포함하는 태극과 같습니다. 음양이라는 표면의 상대세계가 멈추면 바로 그곳이 태극의 세계인 것입니다. 당신이 괴로워하는 그 번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멈추는 순간 바로 그곳이 절대세계인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채워진 드라마의 세계, '나'와 '대상'이 있고, 이것과 저것이 있는 상대 세계는, 바로 그 순간 절대세계 위에서 벌어지고 있으므로 항상 지금 이곳에 이 둘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와 물이 같이 있듯이...(중략)


준비물 : 깨어있기 책자, 통찰기록용 작은 수첩과 필기구, 세면도구 및 타올, 개인컵(또는 텀블러)

[관련강좌]
- 깨어있기™ 워크숍 기초과정
- 깨어있기™ 워크숍 심화과정
- 깨어있기™-계절 수업
- 관성 다루기-감정, 텐세그리티
- 삶의 진실 100일 학교


[관련도서]
- (단행본)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
- (단행본) 『관성을 넘어가기-감정의 대해부』
- (단행본)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 (단행본)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 (단행본)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관련기사]
- 감각(感覺)과 감지(感知)
- 나도 사라지고 세상도 사라지는 체험
- 생각과 느낌의 경계
- 기초과정 참가 후기

[근본 경험]
- '그것'을 만나다
- 현상을 일으키는 내적인 분열을 보다
- 찾는 걸음을 멈출 때 자유는 드러난다




<머  리  말>
‘나’는 어떤 과정을 거쳐 ‘나’라고 느껴지게 되는 것일까요? 아주 어린 아이들이 ‘나’라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라는 느낌은 분명 성장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라고 느껴지고 우리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요? ‘나’라는 것이 어떻게 사물을 ‘보게 되고’ ‘듣게 되며’ ‘알게 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참으로 흥미로운 과정과 놀라운 환상이 겹쳐져 있습니다. 먼저 이 전체 청사진의 뿌리에는 ‘나와 너’라는 이원론이 자리하고 있으며, 생명에너지가 그 중 하나를 더 많이 편들고 있고, 에너지 불균형이 일어난 그 둘 사이의 평형을 이루기 위해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안다’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즉, 당신에게 어떤 사물이 보인다는 것은, 보고 있는 ‘나’와 보이는 ‘사물’로 나뉘어져 있고 그중 ‘나' 에너지를 더 많이 두어 그것과 동일시함으로써 중심으로 삼고 있으며, 거기에서 ‘사물’이라는 대상이 보이고 느껴지고 알려진다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보고 듣고 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환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우리가 보고 듣고 안다기보다는, 보여 지고 들려지고 알려지는 것들에 이름이 붙어 의식이라는 전체 네트워크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기에서 ‘나’란 그저 하나의 요소일 뿐이며, 전체 흐름의 본질은 순수한 생명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채게 됩니다. 분리된 내가 있다는 느낌, 사물이 있다는 느낌, 무언가 들리는 현상, 다른 것과 차이 나는 어떤 맛이 있다는 느낌은 모두 생명력의 장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패턴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책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를 통해 그러한 과정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맛보게 될 것이며, 그러한 경험을 통해 ‘나’라는 패턴에서 벗어나 그 패턴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자리’에 자신이 늘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009. 11. 1 월인



<워크샵 내용>

● 준비물 : 기초과정을 통해 감지 구분하기

● 깨어있기
- 깨어있기란 무엇인가?
- 깨어있는 의식 느끼기
- 사물, 생각, 감정, 오감과 함께 깨어있기
- ‘내가 있음’ 느끼기

● 동일시 넘어가기
- 기억으로서의 나를 넘어가기
- 동일시 끊기 1
* 확장연습 : 주의의 힘
- 동일시 끊기 2

------ 아래는 기초과정에서 연습한 내용으로 감지와  감각을 구분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복습합니다 -------

● 의식
- 의식의 해부도
- 우리는 의식의 근본을 왜 보려하는가?
- 감각하기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 의식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 ‘나’라는 느낌은 어디서 오는가?
- 의식 탄생의 과정

● 주의
- 주의의 종류
- 물은 달이 아니라 달그림자를 보고 있다
* 확장연습 : 침묵으로 가득 채우기

● 감지
- 감지란 무엇인가?
- 중성적으로 느끼기
- 분별감 느끼기
* 확장연습 : 에너지 바다
- 감지의 과거성 : 기억
* 확장연습 : 존재의 중심 찾기

● 감각
- 감각 발견하기
* 확장연습 : 확장하기
- 다양하게 감각하기
- 낯설게 보기
* 확장연습 : 사물과 접촉하기

● 용어정의
- 감각 : 獵� 그대로를 느끼다
- 감지 : 익숙하다, 안다는 느낌 속에 갇히다
- 주의 : 생명의 투명한 힘
- 생각과 의식 :감지들의 네트ㅇㅝㅋ
- 동일시 :삶을 '알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
- 감정 :감지들간의 밀고 당김을 보여주다
- 감각에 열려있기
- 깨어있기 : ‘있음’을 깨닫기
- 각성(覺性) : 의식의 본질을 깨닫기
강좌후기 (총90개)
HereNow ( 2022-02-01  12:39 )       
72차 깨어있기 심화 참가자 후기

의솔(사업)

내적 감지연습과 주의연습들을 거쳐 사물과 생각과 감정, 그리고 ‘나’라는 존재의 느낌과 함께 깨어있기 훈련을 했습니다. 그런 연습과 훈련들을 통해서 외부의 대상에게서 느껴지는 느낌들이 그 대상이 가진 느낌이 아니며 대상과 관계하는 ‘나라고 여겨지는 존재’의 느낌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내부의 나와 외부의 대상 두 가지 모두 ‘비개인적인 나’로 있을 때 드러나지는 느낌의 차원이라는 점에서 같은 외부의 대상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이제껏 일상에서는 ‘나’라는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동일시되어 외부의 대상과 내부의 나로 나누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존재는 관계다’라는 말이 깊이 와 닿으며 대상과 관계함에 따라 매순간 변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나’라는 존재를 잘 사용하는 것이 어렵지만 가능하다는 것도 깨닫게 됐습니다.
앞으로 일상을 겪으며 얻는 경험들이 한 순간에 그치지 않고 조그만 경험들로부터 전체를 깊이 있게 통합하는, 구조를 보려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근본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소(일러스트레이터)

깨어있기 과정에 처음 참석한 후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깨어있기를 들은 뒤 마스터 과정을 시작했고 깨어있기를 여덟 번 정도 참여하며 의식 작용을 좀 더 세밀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미세한 마음 작용을 더 많이 의식화하게 되었고, 나타난 모든 느낌은 내가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요즘은 생활에서도 ‘나’라는 기준에 묶이지 않고 ‘나’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이 자주 느껴집니다. 삶의 거센 파도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깨어있기 과정을 통해 파도를 잘 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마치 히든카드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처럼 안도감이 느껴집니다. 안도감도 나타난 느낌이지만요. ㅎ
그동안 많은 질문에 답하며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신 월인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절로(화가)

주의가 주체와 대상을 결정한다고 단언한다면 단박에 수긍할 수 있는가? 내가 본다는 느낌, 내가 듣는다는 느낌과 같은 주체의 느낌은 주의가 많이 몰린 곳에 느낌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주의가 흘러가 닿은 곳에 대상의 느낌이 만들어진다. 주의를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마치 고기압과 저기압처럼 그 차이가 주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상 없이 주의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정보가 있어야 드러나는데, 이렇게 주의는 대상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

사실, 대상은 주의가 대부분이다. 99%가 주의, 나머지 1%가 대상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구체적 방향성, 즉 정보가 된다. 주의라는 에너지와 정보라는 방향성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느낌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생각, 느낌, 감정과 같은 내적 대상뿐만 아니라 눈앞의 사물과 같은 외적 대상도 마찬가지다. 사실 모든 현상계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대상이 실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실체이고 대상은 관계가 형성한 일시적 모습이자 느낌이다.

‘나’란 것도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대상이 있으면 그 대상을 향하는 주의가 흐르고 주의가 많이 몰린 곳의 에너지와 정보가 쓰여 그 관계의 결과로 느낌이 생겨난다. 그리고 대상이 아닌 쪽을 ‘주체’, 즉 ‘나’라고 부른다. ‘나’란 것은 나란 존재가 타고 다니는 일종의 자동차와 같다. 내 기준, 내 경험과 같은 내용을 총합한 것에 붙인 이름이다. 이렇게 ‘나’는 관계에 의해 존재하는 추상적인 것이지 한결같은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통해 주의를 살펴보자면, 한 생각에 주의가 많이 몰리면 그 생각은 사실이 되고, 이렇게 생각에 주의, 즉 에너지가 많이 몰린 것을 그 생각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가상과 실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정도에 따라 가상과 실제로 나눠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무한의 공간에 생각으로 집을 짓고 ‘나’, ‘세상’이란 틀을 규정하여 살고 있다. 모든 생각, 이름, 개념이 이런 집을 구성하는 벽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머릿속 가상의 공간을 실제라고 믿고 아바타처럼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 모든 생각의 틀을 벗어난다면 지금 이 순간의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중요한 의문이 될 것이다.

이하은(대학생)

이번 깨어있기는 느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이론에서 경험으로 몸소 느끼게된 계기였다. 백일 학교 초반부터 느낌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느낌을 바라봐야 한다, 느낌은 내가 아니다 등의 말들을 많이 들었고 이론적으로는 그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부분이 많지 않아서 막연한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깨어있기 심화 과정에서 주의에 대해 많이 다루다 보니 느낌이 내가 아님이 좀 더 명확하게 와 닿은 것 같다. 특히 주의에 주의 주기가 가장 도움이 되었다. 내 생각과 감정, 느낌으로 흐르는 주의에 주의를 주면 그 느낌과 나 사이의 거리감이나 틈이 느껴지고 그 사이로 주의가 흘러 그 느낌까지 도달하는 것이 느껴져서 느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또 강아지 사진을 보며 그 사진을 보는 주의가 시작되는 곳과 그 사진을 보는 나에 대한 주의가 시작되는 곳을 찾는 과정을 거치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냥 여기 있는 나라는 것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 것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수업을 더 듣고 보니 그냥 보고 있는 또 다른 나였을 뿐 진정한 나라고 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나라고 느끼는 것이 나가 아니라는 것, 그저 나의 강한 주의가 들어간 느낌일 뿐이라는 것은 확실해졌다. '나'라는 느낌이 참 다양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진정한 나는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것만으로도 나라고 여기는 모습들에 집착하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래야 한다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HereNow ( 2022-02-01  12:37 )       
70차 깨어있기 심화 참가후기

'나'와 '대상'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 둘의 만남의 결과인 '느낌' 하나만 존재할 뿐이다
_저절로(화가)

내가 눈앞의 대상을 본다. 내가 세상을 본다. 이 당연한 전제가 깨어있기 심화과정에서는 흔들린다. 나와 대상이라는 주객관계는 주의의 불균형으로 생겨난 일종의 마음 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주의가 많이 몰린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흐름이 생겨나는데, 주의가 많이 몰린 곳이 ‘주’가 되고 적은 곳이 ‘객’이 되는 것이다. 즉 주객관계의 ‘주’에 ‘나’란 이름을 붙인 것이고 이것도 마음의 그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주객관계는 세상을 분별하고 경험하기 위한 마음의 장치이다.

내가 대상을 본다는 것도 일종의 느낌이다. 내 쪽에서 대상 쪽으로 주의가 흘러가는 느낌이다. 이런 익숙하고도 당연한 흐름을 의식적으로 바꿔볼 수 있다. 대상과 나에게 공평하게 똑같이 주의를 줄 수도 있고, 대상이 나를 바라보도록 주의를 대상에 더 많이 줄 수도 있다. 그 결과로 익숙한 ‘나’의 느낌이 흐려지거나 사라진다.

이렇게 ‘나’의 포지션은 주의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란 것이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라는 포지션의 느낌을 ‘주체감’이라고 한다면 이 느낌과 함께 대상에 대한 경험기억이 쓰이면서 ‘나’로서 역할하게 된다. 다시 말해, ‘나’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만나서 주체로서의 느낌(주체감)과 대상에 대한 내 속의 경험기억이 끌어올려져 ‘나’로 작동하게 된다. 결국 대상이 없다면 주체로서의 느낌이나 경험기억이 작동하지 않는, 즉 ‘나’란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대상에 대해 느끼는 느낌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내 느낌이다. 똑같이 보고 있는 듯해도 사실 다 다르다. 모두 자신의 경험으로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사실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라는 의식적 감각기는 개별적이고 한정적이다. ‘나’와 ‘너’라는 감각기의 종류에 따라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손과 탁자에 비유하자면, 손이 탁자를 만져 생긴 느낌은 손의 느낌도 아니고 탁자의 느낌도 아닌 손과 탁자의 만남에서 비롯된 느낌이다. 우리는 대상을 볼 때 실제 대상을 보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내 기억 속의 경험기억을 불러내 외부 대상이란 자극에 덧씌워 본다. 그러므로 실제 대상을 볼 도리가 없다. 아니 실제 대상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결국 탁자는 내 안의 탁자이지 실제 탁자가 아닌 것이다.

여기서 ‘손’이라는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의 경험기억이 ‘나’로서 역할하고, ‘탁자’라는 외부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 의해 내 경험기억 속에서 도출된 ‘느낌’일 뿐이다. 그러므로 ‘손’과 ‘탁자’로 비유된 ‘나’와 ‘대상’이란 것은 개념적 구분일 뿐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손과 탁자의 만남의 결과인 ‘느낌’ 하나만 존재할 뿐이다.
HereNow ( 2021-09-25 10:13 ) [삭제] IP Address : 116.35.221.149
투명한 주의를 발견하다
_자인(부동산업)

깨어있기 심화에 대한 기대를 안고 홀로스에 도착하니, 이제는 익숙함과 반가움이 앞선다. 보초 서고 있는 진돗개 태풍이가 짖어대는데 따뜻한 음성으로 맞아주시는 월인님을 다시 뵈니 반가움이 올라온다.
지난 시간의 핵심인 감지에 대한 아리송한 부분을 복습하면서 확연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법 같은 카리스마에 흡수되어 시작부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다양한 영상과 함께 생각, 느낌, 감정을 대상으로 한 그 흐름의 중심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반응에 대한 마음의 작용으로 알게 되는 나와 의식 사이의 간격, 대상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나’란 주체를 의식하였다. 이때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투명한 주의가 항상 내 곁에서 나의 반응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다는 원리를 알게 되었다.
대상이 나에게 향하는 주의의 흐름에 연결되어 가늘게 흘러들어오고, 자연의 짙푸른 녹음이 나에게 향하는 깊이를 느끼면서, 대상과 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의를 어느 쪽에 많이 주느냐에 따라 주객이 옮겨 다니고, 보이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잠들어 살아왔던 나에게 이러한 앎이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쏠린 주의를 나라는 것을 제거해 가볍게 하니, 주변의 모든 것이 친화적으로 보이고 더 많이 느껴지게 되니, 내 안에 생긴 작은 공간에서 자유를 맛보았다.
주의란 생명의 힘이 본질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의식으로 표현된 최초의 모습이라는 말씀이 아직도 선명하다. 투명한 주의라는 옷을 입고 또 바라보고 행동할 때 슬픔과 기쁨도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도 새로웠다.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투명한 나의 주의를 찾을 수 있는 체험을 하였다. 이런 귀한 체험을 하게 해주신 월인님께 감사드리며 오인회를 통해 다시 뵐 날을 기대해본다.

도착했을 때와 출발할 때 항상 옆에 같이 계셔주셨던 저절로님 감사합니다.
메타몽님 아침 감사합니다. 식당 밥도 감사합니다.
HereNow ( 2022-02-01  12:36 )       
68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가원(홀로스공동체학교)

‘생각, 느낌,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라는 큰 틀로 시작한 심화과정은 기초과정을 마쳐서인지 기초 때보다 깊어지고 연습량도 많았으나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일단 느낌을 파악하는 연습으로 사진 수 십장을 빔으로 보면서 화면이 뜨자마자 첫 느낌 잡기를 시작으로 2박 3일 동안 15개 정도의 연습을 체험하였다. 매 연습 후에는 1. 연습한 행동 2. 연습 중 일어난 현상 3. 체험 후 통찰 이렇게 세 가지로 경험요약을 하였다. 요약한 것을 발표하면서 선생님께 점검을 받고 강의를 듣고 다시 경험하기를 반복하였는데 이론으로 배운 것을 실제로 경험을 한다는 것은 쉽지는 않지만 알도록 하는 것에서 살도록 이끌어 주시니 마음과 몸으로 익혀지는 것이었다.

마음의 작용과 이치를 알고 느낌의 세계가 어떠하며 감정을 어떻게 도구로 써야 하는지 등을 경험하게 되면서 진아, 내 존재인 있음 자체까지도 내려가볼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이나 느낌, 감정 등이 알록달록한 블럭들이라면 그 있음은 그 블럭들을 올려놓은 판과 같아서 변함없이 그냥 있을 뿐이며 생각, 느낌, 감정 등은 그 판 위에 놓였다 사라질 뿐 참 존재가 아니라는 것,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기 존재는 생각보다 느낌보다 감정보다 크며 그 위의 어떤 상처나 슬픔 등은 왔다갈 뿐 존재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동일시에서는 대상의 대상이 되어 내 쪽에서 나가던 주의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연습을 하였다. 주와 객이 바뀌니 나라는 것도 하나의 느낌이 되어 분리되면서 대상은 남고 나는 사라지는 경험을 하였다. 동일시가 된다는 것은 거기에 에너지가 실리는 것인데 주의가 많은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고 한다. 즉 에너지가 많은 곳에서 에너지가 부족한 곳으로 흐르는데 짝사랑의 예가 그와 같다고 하셨다. 사랑이 많은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주의가 온통 가 있어서 대상만 있고 자기는 없다는 것이다. 둘이 서로 사랑하게 되면 시너지가 나서 둘 다 자기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예는 과거 경험으로도 그 이치를 알 수 있었다.

주의라는 에너지는 분별하는 에너지인데 이것이 뭉쳐져 있는 것이 동일시이고 이것이 자기신념으로 나타나면 죽음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사랑이라는 에너지가 무한하여 네게로 그리고 내게로 서로 흐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서로를 잊고 사랑만 남을 수 있음을 발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각의 연습들이 어찌나 세밀하고 구체적인지 통찰과 함께 간절함이 있다면 삶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깨어있기 과정에서의 경험들이 마음의 전반적인 구조와 이치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 매번 연습하고 스스로 공부하면서 체험한 것을 계속 논하자는 말씀으로 과정을 마쳤다. 기초와 심화를 합하면 30여 가지가 넘는 연습들이 있었다. 이중 한두 가지라도 제대로 잡고 깊이 들어간다면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불편한 상황을 느낌으로 느끼고 동일시되어 있다는 걸 깨닫고 생각이나 느낌, 감정 등이 나라는 것과 동일시가 되지 않으면 자유로워질 것이며 빈 마음을 자꾸 습으로 익히면 빠르게 감정 밑의 구조를 바라볼 수 있고 빠져나오기 쉽다는 것과 기준을 넘어가는 것이 자기를 넘어가는 것이란 말씀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종교계 어느 어른은 배운 것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기간이 70년 걸리더라고 말씀하셨다. 지식이 지식으로 사용되어 빠져나가는 데 쓰이지 않고 지식이 나도 남도 자유롭게 하는 도구로 쓰이도록 삶으로 사는 것은 이제 각자의 몫이 되었다.
나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신 월인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별빛(사업, 홀로스공동체학교)

깨어있기 심화라는 강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난 깨어있기 기초과정의 연속이었다. 기초과정이 주로 사물을 이용한 감지의 기초(접근 방법과 순서에 있어 먼저 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기초라 이름지을 뿐 기초 이상의 과정)를 연습하고 주의에 대한 개념과 주의제로 혹은 전체주의 등을 연습하였다면, 이번 심화과정에서는 주로 내적 감지에 대한 기초과정과 주의 상태의 변화에 따른 감지내용의 변화를 경험하고, 마침내 주의의 본바탕을 알아채는 밑바탕을 구축하는 것까지의 연습 혹은 개론이었다.

내용의 주제를 잘 체득하고 적용한다면 우선 현실적으로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며 피동적으로 반응하는 삶에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대처하는 삶으로 변화하여 살아갈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본인이 하기에 따라서는 자아를 넘어선 근원의 나를 찾아가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내용 중에서 특히 부모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런저런 인간관계, 나를 구성하는 개념, 내 몸, 내 존재에 대한 느낌을 찾고 느낌을 지워나가는 연습을 할 때에는 그동안 이론적으로 들어온 감지의 필요성을 느낌과 동시에 하나씩 지워지며 좁혀져오는 어떤 포위망에 심리적 저항감과 함께 정말 자아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생각에 따라 뇌 속에서 느껴지는 부위를 느끼는 연습도 있었는데 나란 존재가 내 두뇌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느끼고 있음을 느끼며, 나는 뇌가 아니다는 인식에도 이를 수 있었다.

매번 강의 때마다 느끼지만 월인 선생님께선 이번에도 정장을 갖춰 입고 강의에 들어오셨다. 사실 수강하는 이들이 모두 현재 백일학교나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무방할 터이지만, 옷차림만으로도 수업에 대한 선생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진지하고도 열정적인 모습으로 진리를 전해주신 월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HereNow ( 2021-05-20 10:29 ) [삭제] IP Address : 116.35.221.149
완전히 일상에서 깨어있기를 방해했던 요인을 발견하다
_이류(약사)

안다는 생각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는 요즘, 마음공부 특히 선 공부를 오래 한 도반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깨어남의 체험 이후 보임을 하는 과정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는데 본성의 체험은 했으나 어떻게 그것이 삶이 되고 일상에서 걸림 없는가 하는 것에서 차이점을 보이기도 하였다. 대부분 조사어록을 참고로 하고 화두 1700공안을 계속 타파해나간다는 것이었다. 오래전에 본성을 보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으로 한동안 화두를 들고 선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화두가 해결된 이후에도 삶 속에서 관성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잊고 지낸 터였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는 점검의 차원에서 참가하게 되었는데 연습들을 하면서 통찰이 있었고 연습이 어느 정도 잘된다는 것으로 공부가 되었다(?!) 여기고 일상의 습으로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이 알아차려졌다. 연습들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예전 화두를 타파하는 방식으로 깨어있기를 해왔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생각, 감정, 느낌과 함께 깨어있기’라는 소제목의 주제와 함께 시작된 주의가 머무는 곳이란 연습에서 시각을 통해서는 대상을 보는 주의의 시작점을 찾으며 결국 전체마저 느껴지는 作者 없는 作用만 있음과 굳이 ‘나’가 드러나지 않아도 대부분의 상황이 조화롭게 되어감이 분명했다. 그러나 선호표상체계가 청각이라 훨씬 예민한 감각인데 청각과 관련하여 소리를 따라가지 않는 주의 중립은 시각만큼 자유롭게 쓸 수 없음이 자각되었는데 특히 오랜 상처를 건드린 사람이나 상황에 처하면 그 순간 ‘나와 대상의 분열’이 일어나는 미세한 감지인 직전직후의 ‘내면의 소리’인 생각의 느낌을 알아채어 잡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심리학을 접하고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여러 개 취득하며 그 방식으로 트라우마와 환자를 다루는 것이 습이 되어 문제의 원인을 스토리에서 찾으려고 해왔던 것도 한몫을 했다. 그것이 인간을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면서 동시에 자비심을 갖게 한다는 생각이 굳어져 ‘충분히 경험해야 사라진다’는 신념을 갖게 했고 관련되어 일어나는 생각들을 순간 내가 일으킨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는 곧 나와 대상, 상황이 만드는 과거를 바탕으로 한 ‘허구 곧 생각의 구조’인 것이다. 그것을 사실로 여기는 마음이 무의식에 있었기 때문에 스토리와 생각에 빠지곤 했던 것이고 깨어있기의 통찰이 완전히 일상에서 자리 잡는 것을 방해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이치는 불변’이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가 ‘비유비무非有非無’이기에 대상과 세계 역시 ‘비유비무非有非無’인 것이다. 통찰이 통찰로서 끝나지 않으려면 이치가 투철해야 하며 일상에서 부단히 구체적인 연습을 통해 익어감이 전제되어야 함과 체계적 점검이 중요함을 이번 깨어있기 심화를 통해 깨닫게 되었으며 귀한 시간이었다. 결국 이치가 강한지 습관이 강한지의 싸움이다. 이치는 불변하며 조화가 전제되어 있고 조화를 추구한다. 아직도 간과하고 있는 이치와 원리는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이번 깨어있기 심화의 경험과 통찰을 정리하고 있다.

처음 깨어있기 심화를 했을 때 ‘우물이 당나귀를 본다’가 해결되었고 ‘나’에 묶여있던 주의가 풀리면 자연스레 통찰로 연결됨을 확인하였었다. 그러나 그것이 삶 속에서 자유롭게 쓰일 수 없다면 1700공안의 타파가 무슨 득이 될 것인가.
HereNow ( 2022-02-01  12:34 )       
66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참가 후기

조조(회사원)

몸과 마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런 저런 배움을 시작한 지 10여년이 되었는데, 6년 전쯤 부처님 가르침인 불법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무아’ 혹은 ‘나라 할 만한 것이 없다’를 깨달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반복해서 설명을 들으면 알 듯도 했지만, ‘나’는 너무나도 있는 것 같은데, ‘무아’라니… 실감이 잘 안되었습니다. 머리로 이해해서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고 경험으로만 알 수 있다고도 하는데 그 경험은 또 어떻게 해야 일어 나는지 막연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10월에 깨어있기 기초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고, 3달 뒤인 이 달에 심화 과정에 오게 되었습니다. 기초 과정 바로 다음 달에 심화 과정을 듣고 싶었지만, 빠질 수 없는 집안 행사가 있어서 3달 뒤에 오게 되었는데, 그 시간 동안 연습이 된 부분은 연습이 된 대로 도움이 되었고, 까맣게 잊혀졌던 것은 또 다시 신선한 충격이 되어서 또 좋았습니다.

심화 과정 첫 시간에 ‘앞으로 2박 3일 동안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발견하도록 짜여진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끝나고 보니 정말 정교하게 짜여진 연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것들이 어떤 원리로 생겼었는지 정리되었고, 그 동안 명쾌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이 왜 생기는지 정리되었고, 비교/동일시/관성 등은 우리를 괴로움에 빠뜨리는 것이어서 나쁜 것인 줄 알았는데, 자연스러운 것,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투명한 에너지 상태인 주의, ‘있음’의 느낌, 어떤 생각에 대해 연관되어 일어나는 뇌의 물리적 느낌을 경험한 것 등이 좋았습니다.

이 후기는 심화 과정 후 일상으로 돌아온 지 3일된 상태에서 쓰고 있는데, 지금 상태에서는 ‘어떤 생각에 대해 연관되어 일어나는 뇌의 물리적 느낌을 경험’한 것이 가장 유용합니다. 한 번 생각에 빠지면, 지금 필요하지 않은 생각 혹은 이미 했던 생각을 다시 반복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도 중단하지 못해서 생각에 시간을 많이 썼는데 지금은 덜 쓰고 있습니다. ‘음… 내가 지금 이 생각을 왜 하고 있었지?’하고 빠져 나왔다가 바로 다시 아까 그 생각에 빠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생각에서 잠깐 빠져 나왔을 때 그 생각과 연관되어 느껴지는 뇌 부위나 신체 부위에 주의를 돌리면 다시 빠지지 않아 시간을 벌었습니다. 회사에서의 업무 처리 속도도 빨라졌는데, 전에는 ‘아~ 하기 싫다~’라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 실제 업무를 하는 시간보다 더 길었었는데 이제는 바로 업무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깨어있기 심화 과정이 본 게임이었습니다. 마치, 의대에 예과와 본과가 있듯이, 깨어있기 기초 과정은 예비 단계였고, 심화 과정이 본 과정이었습니다. 혹시 기초만 하시고 심화를 아직 안 하신 분이 계시다면 심화 과정을 어서어서 하시기를 강추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ereNow ( 2022-02-01  12:33 )       
금강석과 같은 방편
- 이류(약사)

깨어있기 워크숍 이전에 다양한 마음공부를 하며 삼매와 깨어남의 체험을 통해 깊은 평화와 자유를 맛보았었다. 그러나 원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허무감과 지루함을 시작으로 ‘나’라는 相에 다시 갇혀 몇 년의 세월을 보내며 ‘조주 30년’이라는 막막함 앞에 놓여있었다. 30년을 더 공부해야 ‘나’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단 말인가!? ‘나’의 굴레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화두가 다시 주어진 때였다. 깊은 평화와 자유의 느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 다시 힘든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자리’에 푹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조주어록이나 경전들을 다시 봤고 모든 것이 생각임을 알았지만 타고난 경향성과 그간 쌓아온 습이 끈질겼고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에 빈공간이 생긴 것과 지금 이 순간이 다라는 사실, ‘지금 있는 것이 영원한 것이고 영원한 것은 지금 있는 것이다’가 해결된 것으로 공부의 끈을 부여잡고 가고 있는 터였다. 중환자를 보며 약국을 한 지 25년이 지나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고 늘 신경을 많이 쓰며 살았기에 경향성과 습관이 잡히지 않자 더욱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만난 ‘깨어있기’는 ‘조주30년’이라는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을 풀어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2년 전 깨어있기를 처음 접한 이후로 지금까지 수차례를 하면서 ‘나’라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있음과 없음을 넘어선 그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그간 쌓아온 습과 그렇게 힘들었던 감정들에서 놓여지며 비로소 ‘나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에서 ‘주의가 머무는 곳’,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 그 외 주의와 동일시 연습 등을 통해 어릴 때부터 힘들어 했던 트라우마에 선호표상체계인 청각이 깊게 관여하여 힘들어했던 것과 동시에 내면의 깊은 메시지와 자연에 흐르는 생명계, 존재계에서 들려오는 통찰들이 모두 소리로 전달되어 왔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임을 통찰하면서 각각의 사건 속에 감춰진 커다란 진실이 통째로 다가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떤 것도 버릴 것이 없는 것이다.
타고난 느낌이 섬세하고 정서적으로 예민하여 감정의 기복이 무척 컸고 감정의 억압과 슬픔이나 두려운 상황에 동일시되기 쉬워 오랫동안 힘들어 했었다. 그간의 깨어있기 연습들을 통해 생각, 감정, 느낌, 그리고 ‘나’와 세계의 실체, 모든 것이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 무의식까지 체득되어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에서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를 하면서 아무리 힘든 감정이라도 투명한 주의가 가야 감정이 증폭된다는 것, 어떤 것도 ‘나’가 아니라는 통찰이 깊어져 깨어있는 상태에서 어떤 두려운 감정에서도 투명한 주의를 자각하며 직시할 수 있었다.
‘깨어있기’는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누구에게나 근본적 통찰과 더불어 ‘나’라는 현상과 ‘세계’에 대해 깊이 원리를 터득하게 하므로 자유로 이끄는 혁명적인 방법임에 틀림없다. 근본 통찰이 있다 하더라도 타고난 경향성과 습으로 ‘조주 30년’이라는 보임을 거쳐야 ‘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라는 여정’을 믿고 있는 공부인들에게 금강석과 같은 방편이 되어 더욱 깊이 쉴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바쁜 현대를 살아가며 끊임없이 분별해야 하는 누구에게나 산 속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현장에서도 깊은 지혜와 평화를 주는 교과서이자 지팡이가 되어줄 것이다.
지혜는 끝이 없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공부임을 알기에 ‘깨어있기’의 지혜와 ‘있음과 없음을 넘어선 나’를 등불로 삼아 끊임없이 정진할 것이다.


전체에 대한 경험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다
-묘솔(백일학교)

깨어있기 기초를 통과해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지만,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모든 파도는 바다지만, 바다는 파도가 아니다.’라는 것은 명징하지만, 바다에서 파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바다가 온전히 겪어내어야 할 삶인 것이다.
깨어있기 심화 수업은 부처님 손바닥 위에 손오공을 다스릴 수 있는 비기를 전수받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체험했던 것들의 의미와, 일어난 현상의 구조를 의식화하면서 경험을 재인식할 수 있었다. 전체에 대한 경험은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거라고 믿어왔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이론으로, 삶으로 구체화되어 표현되어지니 운동을 멈췄던 위장이 다시 소화 흡수를 시작한 듯 개운했다.
먹히지 않고, 씹히지 않고, 뜯기지 않고, 제대로 느끼며 먹고, 씹고, 뜯고 맛보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기쁘고, 기쁘다. 감사합니다.


자동적 주의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 메타몽(백일학교)

이번 깨어있기 심화 역시 안다는 마음 없이 진실되게 참여하자는 마음으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 구성은, 첫날은 오후에 깨어있기 기초에서 배웠던 감지 복습을 하였고 새로운 감지 연습들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부터는 사물, 감정과 함께 깨어있는 연습을 했고 마지막 날에는 내가 있음, 동일시 등 나라고 여기는 느낌과 연관된 연습들을 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깨어있기의 새로운 측면들을 많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첫째 날에 와 닿았던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자동적 주의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챈 것이었습니다. 의도적 주의로 어떤 대상을 쳐다보고 있는데 의도적 주의와는 별개로 자동적 주의가 다른 것들을 파악하고 있는 작용이 느껴졌고, 나라는 의도적인 작용은 마음의 작용에서 극히 일부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어떤 것들을 판단할 때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특히 얼굴 표정에 대한 느낌을 판단할 때 얼굴 전체의 느낌이 아니라 눈썹의 모양이나 눈동자의 모양 하나만 가지고 그 사람의 전체 느낌이 무엇이라고 판단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패턴이 어떤 사람의 감정이나 태도를 판단할 때도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에 와 닿았던 것은 마음속에 상황만 있어서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기쁨을 느끼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커다란 음악 소리 등 주변의 기쁜 상황만 떠올렸습니다. 그때까지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그 음악에 다른 사람들과 내가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떠올리니 기쁜 마음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내 안에 일어난 감정은 그 상황과 그 상황 속의 ‘내’가 있어야만 느껴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셋째 날에 와 닿았던 것은 주의가 닿아서 힘이 실린 곳이 나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많이 했었지만 이번에는 지금 느껴지는 나의 느낌이 그런 느낌이라는 앎으로 비춰져서 그런지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을 제공해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공부한 도반 분들 덕분에 현상과 함께해도 괜찮다는 것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인연에 감사하고 앞으로 오실 분들도 원하시는 바 얻고 가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바라보는 연습
- 도날드(공무원)

100일학교 과정 중에 깨어있기 심화과정이 두번째이다.
사실 지난번 이미 학습한 과정인데 새로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며 임했다.
과정을 시작하면서 처음들은 것이 ‘행동’, ‘경험’, ‘통찰’로 요약되는 “경험요약절차”이다. 전에도 수없이 많이 들은 내용이지만 이번에는 내가 지금까지 소홀이 한 정말 중요하고 것이라는 것이 와 닿았다. 나는 경험적으로 볼 때 와 닿으면 행동이 바뀌었다. 지난번 100일과정에서 있었던 감지연습의 효과를 경험한 뒤 감지력을 길러야겠다는 결심이 있은 뒤 감지를 하는 마음가짐과 행동이 달라졌다. 그 효과는 의식이 더 미세해져서 더 세밀하고 더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이로서 경험을 동반한 통찰이 가지는 힘을 알게 되었다.
사진 보면서 감지 느끼기를 하면서 전에 보았던 사진이라 본 기억은 있지만 처음 하는 것처럼 새로웠고 감지가 전보다 더 선명했다.
그동안 100일학교 과정에서 연습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표정사진을 보고 나는 다른 참가하신 분들보다 점수가 낮았다. 내가 살아온 방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 소리를 물 소리가 아닌 그냥 소리로 듣는 연습에서 소리는 소리대로 들으면서 주의를 나에게 주다가, 주의를 소리에 주다가 또 주의를 주의에 주는 것을 반복하면서 들었다. 참 미묘한 연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빛은 자신의 빛으로 자신의 빛 그림자를 만들어야 하는 것 같은데 가능할까?”라는 느낌이 있었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내 마음이 공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자!”라는 의도를 가지고 보니 몸에서 오는 이런저런 긴장감과 전율은 보였지만 피하고자 하는 경향성은 보이지 않았다. 공포를 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다는 것이 공포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 체험할 단계가 되기에는 좀 더 사전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상을 의식하는 나를 느끼면서 산책하는 과정에서는 나무나 돌 바위 등 경계가 명확한 대상에 대해서는 ‘나’가 느껴졌고 하늘이나 들판 같은 경계가 넓은 들판같은 대상을 느낄 때는 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산책하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상태, 긴장여부, 발걸음의 속도 등이 느껴졌고 이것은 내안에 쌓여있는 그것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대화하는 상대와 나에게 동등하게 주의를 준 상태에서 대화하는 과정에서는 대화와 질문이 내면에 쌓여있는 것에 의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게 다가왔다.
거울에 있는 내가되어 나를 바라보는 연습에서는 설명과정에서 예시를 든 “무엇인가 지켜보는 자가 있다.”는 느낌에 그 무엇인가를 나로 치환하면 된다는 설명이 나를 다가왔다. 이 예시는 생활에서 어떻게 연습을 할 것인지를 알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과정도 ‘깨어있기’라는 모자이크 조각을 맞추는 게임에서 더 많은 빈 부분을 채운 3일이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성심을 다한 대표님의 설명에 감사한다.


뚜벅 뚜벅 걸어 가려는 마음입니다.
- 해탈

2박3일
많은 것을 했다는 것은 시간이 말해줄 뿐
남은 것은 없습니다.



빈병을 발견해가는 과정
- 저절로(화가)

깨어있기 심화 수업은 감지연습의 복습으로부터 시작했다. 감지는 대상에 대한 내 마음의 인상을 느끼는 것이다. 외적감지는 외부의 대상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이름이나 생각이 붙기 직전의, 대상 자체의 느낌을 느끼는 것이라면, 내적 감지는 상대의 눈빛과 같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느끼는 것이다. 외적, 내적 감지라고 이름붙이기는 했지만 사실상 내외가 없다. 모두 내 마음 속의 느낌이다. 시각적 대상이 아닌 청각적 대상으로 다시 살펴보자.
만약, 타인의 ‘지루하네!’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밖의 느낌이라 여겨서 남의 느낌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마음속으로 ‘지루하네!’라고 생각했다면 나의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사실은 이름표만 다를 뿐 나의 느낌, 남의 느낌 모두 내 느낌이다. 머릿속이냐 귀냐, 소리가 입력된 위치만 다를 뿐 내가 인식하고 내 데이터로 해석해서 느낀 내 느낌이다. 여기서의 나는 개체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인식하는 자로서의 나이다. 마찬가지로, 저 사람의 감정과 내가 느끼는 저 사람의 감정은 두 개로 별개의 마음이지만 둘 다 내 마음속의 일이다. 다만 느낌이 나의 느낌이면 동일시된 스토리 속의 나의 느낌이므로 강렬하게 느껴지고, 남의 느낌이면 좀 더 약하게 느껴지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내 마음속에 만들어 지는 느낌으로 우리의 세계가 구성되어 있다. 내부의 내 느낌과 외부 대상의 느낌도 하나의 바탕, 배경 속의 느낌이다.
느낌이라는 것은 검은색, 흰색과 같이 반대 항이 늘 함께 인식된다. 느낌은 대비로 인해 생겨나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의 세계는 느낌의 세계이며, 느낌은 쌍으로 이루어진 이원성의 세계다. 나라는 것도 느낌이며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주객관계로 인해 내가 생기고, 그래서 내가 주체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착각을 한다. 주의가 나에게 더 많이 몰려서 내가 보고 있다는 주체로서의 느낌을 만들어내고, 이 느낌(주체감)과 대상의 내용(대상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합해져 이 순간의 나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대상이 있으면 나는 생겨나고 대상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느낌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나를 들여다보면 찾는 마음만 있지 찾는 대상은 없다. 없는데 왜 있다고 느끼고 살까? 순간순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상들을 보면서 그 대상에 대한 경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나로 여긴다. 삶은 내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연속이다. 늘 같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추상적인, 이미지로서, 기억으로서의 나이다. 사실, 대상에 따라 다른 내가 나타난다. 비유하자면, 나라는 일관된 빗줄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빗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같은 빗줄기처럼 보일 뿐이다.
결국, ‘지금’ 경험하고 있는 나만 존재한다. 여러 경험들에서 나라는 가상의 개념을 추출해서 내가 있다고 여긴다. ‘내가 존재한다.’는 허구적 생각이 먼지라고 한다면 그 먼지를 중심으로 수증기가 들러붙어 커진다. 스토리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혼돈에 빠지지 않는 건 나(자아)라는 강력한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아가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할 때, 자유를 잃는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우리는 느낌이 강하면 경험했다고 한다. 느낌은 주의가 가야한다. 사실, 경험은 자극이 아니라 주의에 매였다. 대상에 대한 경험의 99%가 내 주의 때문이다. 대상들의 느낌(정보, 자극)의 차이는 의외로 1%에 불과하다. 외부의 대상뿐만 아니라 의식적 경험의 대상도 마찬가지다. 기억은 청사진일 뿐이고 그 기억에 주의를 쏟아야 생생해진다. 기쁨과 슬픔은 사실 1%의 차이 밖에 안 된다. 거기에 쏠린 주의(에너지)가 99%를 차지한다. 강렬한 감정은 주의의 증거다. 주의가 많이 쏠려서 강한 감정이 일어난 것이다. ‘화’와 같은 감정은 스토리에 기반하고 있고, 그 스토리가 사실이란 믿음 때문이다. 화의 99%가 주의인 것을 알면, 그 1%의 스토리는 즉각 멈출 수 있다. 이처럼, 차이가 아니라 주의, 즉 에너지가 진정한 나다.
결국, 나와 대상의 만남에서 생겨난 ‘느낌’은 나의 ‘느낌’과 대상의 ‘느낌’이 만나서 만들어낸 느낌이다. 나를 포함한 세상이 실체가 아무것도 없는데 묘하게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느낌은 빈병 즉, 배경, 바탕 속에 있고 그 속에선 너나가 없이 동일하게 알아채지고 있다. 빈병은 참되고 나머지는 다 허상이다. 깨어있기는 빈병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Copyright 1999-2022 Zeroboard